
에스파(aespa)가 신곡 ‘LEMONADE(레모네이드)’를 들고 컴백했습니다 레모네이드를 떠올린다면 보통은 상큼달달한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상큼함마저 자신들의 독보적인 ‘쇠맛’으로 믹서기에 갈아버린 역대급 쇠콤달콤 노래 에스파 신곡 LEMONADE를 리뷰 해보겠습니다. 시원한 음료 한 잔 준비하시고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
이번 신곡 ‘LEMONADE’를 이어폰으로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신스 사운드가 터져 나오는데, 이건 대중적인 이지리스닝 트렌드를 따르기보단, “우리가 바로 에스파야!”라고 온몸으로 선포하는 듯한 거칠고 묵직한 베이스라인이었습니다. 데뷔 초 ‘Black Mamba’나 ‘Next Level’에서 느꼈던 그 특유의 다크하고 단단한 테크노/하이퍼팝 질감이 아주 제대로 살아있어요. 도입부와 프리코러스까지는 청자를 벽으로 밀어붙이듯 숨 막히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베이스가 바닥을 기어 다니고 비트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와, 이거 진짜 매운맛이구나’ 싶을 때쯤, 후렴구(Chorus)에 진입하는 순간 분위기가 180도 뒤집힙니다. 마치 한여름에 꽁꽁 얼어붙은 탄산음료 캔을 탁! 하고 땄을 때 탄산이 확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엄청나게 시원하고 캐치한 팝 라인이 터져 나옵니다. 앞부분의 그 어둡고 위협적인 분위기는 간데없고, 갑자기 힙하고 청량한 축제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던져버리는 느낌인 거죠. 팬들이 왜 이번 곡을 두고 ‘쇠콤달콤한 맛’, ‘도파민 에이드’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멤버들의 보컬 합도 이번 곡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봅니다. 카리나와 지젤의 매력적인 로우톤 랩이 곡의 빌드업 단계에서 단단하게 뼈대를 잡아주니까, 곡이 가볍게 날아가지 않고 묵직한 무게감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후렴구에서 윈터의 송곳처럼 찌르는 청량한 고음과 닝닝의 트렌디하고 단단한 보컬이 시원하게 리드하는데, 이 파트 분배가 진짜 기가 막힙니다. 거친 사운드 소스들을 멤버들의 세련된 보컬 테크닉으로 완벽하게 중화시켜서,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영리하게 챙긴 완벽한 음악적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를 유심히 뜯어봤는데,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에스파의 성장이 확 느껴져서 소름 돋는 포인트가 많았습니다. 다들 서양의 유명한 격언을 아시나요 ? “인생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서 ‘레몬’은 달갑지 않은 불행, 혹은 인생의 시련과 쓴맛을 뜻하거든요. 즉, 힘든 일이 와도 긍정적으로 극복하라는 교훈적인 속담인데, 에스파는 이 뻔한 이야기를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아주 잔혹하고 세련되게 비틀어버립니다. 예전 세계관 속 에스파가 광야에서 ‘블랙맘바’라는 절대악에 맞서 싸우던 비장한 전사(Warrior)였다면, 지금의 에스파는 이미 그 단계를 초월한 ‘관조자이자 유희자’의 레벨에 도달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사를 보면 자신들을 무너뜨리려고 던져지는 수많은 위협과 억까(억지 까기), 그리고 시련(레몬)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갑게 맞이합니다. “어, 그래? 너네가 나한테 몹쓸 짓을 해? 그럼 난 그걸 통째로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아주 시원하게 원샷해 버릴게!” 하는 식의 태도죠. 이러한 가사 정서는 단순한 능동성을 넘어선 ‘절대적인 우위’를 보여줍니다. 비극적인 상황조차 나를 빛내주는 하나의 놀잇감이나 파티의 음료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독한 광기와 여유가 느껴진달까요? 4세대 아이돌의 정점에서 독보적인 길을 개척하고 있는 에스파의 실제 위상과 자신감이 가사 한 줄 한 줄에 투영되어 있어서, 듣는 내내 짜릿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가 몰려옵니다. 시련을 희극으로 바꾸는 이 당당한 태도야말로 지금의 에스파를 가장 힙하게 만드는 핵심 서사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 타이틀곡 ‘LEMONADE’는 단독으로 들어도 훌륭하지만, 동명의 앨범 전곡을 차례대로 정주행했을 때 그 진가가 백 배 더 살아납니다. 이번 앨범은 수록곡 하나하나가 타이틀곡 못지않은 엄청난 에너지와 밀도를 품고 있더라고요. 마치 전체 앨범이 청자에게 쉴 새 없이 도파민을 주입하기 위해 풀가동되는 거대한 가공 공장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귀에 꽂혔던 트랙들을 몇 개 소개해 드릴게요.
SHAKIN –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베이스 루프와 리듬이 특징인데, 파멸적인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평정심과 여유를 잃지 않는 에스파의 스탠스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도입부 비트부터 귀를 사로잡아요.
Bite – 강렬하고 공격적인 드럼 비트가 귀를 때리는 곡입니다. 나를 가로막는 시련들을 내 날카로운 이빨로 전부 부수어 조각내겠다는 호전성이 폭발하는 트랙이라, 운동할 때 들으면 전투력이 수직 상승합니다.
Can’t Help Myself – 디지털 이펙트로 찌그러뜨린 마초적인 록 사운드와 에스파의 팝적인 보컬이 결합한 곡입니다.. 거친 공격성을 유쾌하고 세련된 에너지로 치환하는 영리함이 돋보여서 제 차애 곡으로 등극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수록곡이 타이틀곡 ‘LEMONADE’가 던진 “비극과 재난을 나만의 유희로 바꾼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장르별로 심화 학습하듯 촘촘하게 이어받고 있습니다. 트랙 리스트를 넘길 때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서사 덕분에 앨범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에스파의 ‘LEMONADE’는 흔하디흔한 ‘여름 걸그룹 댄스곡’이라는 카테고리에 결코 가둬둘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곡은 K팝 신에서 통용되던 청량함의 기준을 자신들만의 ‘쇠맛’과 강렬한 ‘산미’로 완전히 재정의 했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뻔한 달콤함이나 따뜻한 위로 대신, 시련을 기꺼이 이빨로 깨물어 씹어 삼킨 뒤 찌릿한 에너지로 뱉어내는 파격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완벽하게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세대의 걸그룹들이 대중적인 취향이나 정형화된 프레임(청순, 섹시, 혹은 전형적인 걸크러시) 안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면, 에스파는 자신들이 구축한 단단한 세계관과 음악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 어떤 파격적인 실험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수행해 냅니다. “왜 이런 난해하고 강렬한 콘셉트를 가장 완벽하게 소화하는 팀은 항상 에스파뿐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답이 바로 이번 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여름,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지치셨다면 에스파가 단단하게 차갑게 갈아 만든 잔혹하고 짜릿한 레모네이드 한 잔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