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데이트 된 K-좀비 — 「군체」(2026) 리뷰
연상호 감독 /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 주연
「부산행」(2016), 「반도」(2020), 그리고 「군체」(2026). 연상호 감독이 10년에 걸쳐 쌓아온 좀비 필모그래피의 세 번째 챕터다.
「부산행」은 KTX라는 밀실 안에서 여러 특성을 가진 인물들 간의 갈등과 내적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
따지고 보면 좀비는 고립된 상황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도구였고, 진짜 이야기는 그 안에 갇힌 사람들 사이에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반도」는 좀비 사태 이후 황폐해진 한반도를 배경으로 스케일을 키웠지만, 그 스케일을 감당하려다 보니 인물들의 감정선이 희석되어 이입이 어렵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번 「군체」는 다시 밀실로 돌아왔다. 봉쇄된 빌딩이라는 공간은 「부산행」의 기차를 연상시키지만, 감독의 관심이 향하는 곳은 다르다.
이번엔 인간 드라마보다 좀비 그 자체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연상호 감독은 10년 전 좀비들의 꺾기춤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번엔 진화하는 군체라는 개념으로 다시 판을 바꾸려 한다.
줄거리 ※ 스포일러 포함
생명공학 교수 권세정(전지현)은 전 남편 한규성으로부터 바이오 컨퍼런스 참석 제안을 받고 행사장을 찾는다. 컨퍼런스가 진행되던 중, 행사 주최자 강우철에게 원한을 품은 서영철(구교환)이 그에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주입한다. 순식간에 감염이 퍼지고 건물은 봉쇄된다.
감염자들은 초기에는 짐승처럼 기어다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립보행을 하고, 무리를 지어 움직이며, 한 개체가 습득한 정보를 다른 개체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진화한다. 세정은 건물 안에 갇힌 생존자들과 함께 탈출구를 찾으면서, 감염자 군체를 통제하는 핵심이 서영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철은 이번 사태를 새로운 인류를 향한 실험이라고 믿는다. 생존자들은 봉쇄된 빌딩 안에서 계속 진화하는 감염자들을 피하며 영철을 쫓고, 세정은 생명공학자로서의 지식을 활용해 군체의 약점을 파악하려 한다. 탈출과 저지,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진행되며 이야기는 빌딩 최상층을 향해 올라간다.
Key Point
「부산행」의 꺾기춤은 당시엔 충격적인 혁신이었지만 이제는 K-좀비의 기본값이 됐다. 「군체」는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영화의 좀비는 단순한 개체가 아니라 군체다. 개미나 벌처럼 집단 지성으로 움직이고, 한 개체가 습득한 정보가 무리 전체로 퍼진다는 설정이 더해졌다. 처음엔 통하던 탈출 방법이 시간이 지나면 통하지 않는다. 좀비들이 학습하기 때문이다. 진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생존자들의 선택지는 좁아지고 영화의 긴장감은 올라간다. 부산행에서 빛을 차단하면 됐던 것처럼, 이번엔 군체를 통제하는 핵심 개체를 제거하면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목표가 서사를 끌고 간다. 좀비 설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에도 깊이 침투했다는 점에서, 장르물로서의 설계가 이전작들보다 한층 정교해졌다.
한편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구교환이 연기한 “서영철” 캐릭터일 것이다. 영철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만의 논리를 가진 인물이다. 광기 어려있지만, 그 안에 모종의 슬픔도 섞여 있다. 구교환의 빌런 연기는 반도에 이어 이번에도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권세정(전지현)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국 재난 영화에서 생존자 그룹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여성 캐릭터가 맡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세정은 구출받는 존재가 아니라 판단하고 결정하고 움직이는 인물이다.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전지현이 이 역할을 택한 데에 이유가 있는 듯 하다.
Warning Point
개연성이 좋은 영화는 아니다. 안대로 서영철의 눈을 가리고 손을 앞으로 묶은 채 이동시키는 장면은 대표적인 예다. 눈을 가렸으면 손을 등 뒤로 묶어야 하는 게 상식인데, 이러한 기본적인 디테일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자주 드러난다. 이런 종류의 허술함이 영화 곳곳에 산재해 있어, 설정과 묘사의 정합성을 꼼꼼히 따지는 관객이라면 거슬리는 순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군체」는 섬세함보다는 설정의 참신함과 캐릭터의 매력으로 밀어붙이는 영화다. 기대치를 맞춰 가는 것이 진정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일지도…
또 하나, 연상호 감독 영화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관객의 혈압을 올리는 일명 “발암” 캐릭터다. 「부산행」의 이기적인 양아치 승객, 「반도」의 631부대원들처럼, 「군체」에도 어김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 있다. 이번엔 일진 여고생이다. 문제는 이 캐릭터가 관객을 자극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서사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왜 이 인물이 필요했는지가 끝까지 불분명하다. 단지 긴장감을 높이거나 특정 장면을 위한 소모품처럼 느껴지는 쓰임새는, 캐릭터 활용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느덧 5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는 흥행작인만큼, 좀비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부산행」만큼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새로운 좀비 설정을 앞세운 장르 영화로서의 쾌감은 분명히 있다.
연상호 감독이 10년 만에 다시 꺼내든 좀비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 그것만으로도 극장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