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리플에스(tripleS)
K-Pop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세계관과 운영 방식을 보여주는 그룹 트리플에스(tripleS)는 기획사 모드하우스가 선보인 24인조 다국적 초대형 걸그룹입니다. 이들은 “모든 가능성의 아이돌”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 세계 최초로 팬들이 직접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는 분산형 아이돌 모델을 지향합니다. 트리플에스의 가장 큰 특징은 멤버들이 하나의 고정된 팀에만 묶여 있지 않고, ‘디멘션(DIMENSION)’이라 불리는 다양한 유닛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조합된다는 점입니다. 이 디멘션은 생성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며 그룹의 역동성을 이끌어갑니다. 먼저 ‘팬 투표형 디멘션’은 공식 어플리케이션인 ‘코스모(COSMO)’에서 진행되는 팬 투표 시스템 ‘그라비티(Gravity)’를 통해 팬들이 직접 멤버의 조합과 타이틀곡 등을 결정하여 만들어지는 유닛입니다. 반면 ‘자연발생형 디멘션’은 이러한 팬 투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획사의 전략적인 기획이나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조합을 통해 결성되는 유닛을 뜻합니다. 팬들이 직접 아티스트의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는 대중음악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트리플에스(tripleS) – Acid Angel from Asia(AAA)
이 독특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대중과 팬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이자 오해를 낳았던 부분이 바로 초기 유닛 당시 제시되었던 ’10만 장 조건’입니다. 초기 디멘션이었던 ‘Acid Angel from Asia(AAA)’와 ‘+KR)ystal Eyes(KRE)’ 활동 당시, “활동 기간 동안 앨범 판매량 10만 장을 기록할 경우 팀이 소멸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조건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일각에서는 신인 멤버들에게 너무 가혹한 판매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상업성을 지나치게 부추긴다는 비판의 시각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트리플에스가 가진 고유의 ‘대원칙’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판단이었습니다. 트리플에스의 시스템에서 모든 디멘션은 본래 ‘일회성’으로 기획되었으며, 한 번의 활동이 끝나면 해산하고 또다시 새로운 조합을 구성하는 것이 기본 전제입니다. 즉, 10만 장 조항은 유닛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한 독소조항이 아니라, 본래 사라질 예정이었던 유닛을 팬들의 강력한 화력과 지지를 통해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둔 일종의 ‘보너스(예외) 조항’이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10만 장 조건’은 트리플에스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유닛의 성격이 진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태를 바꾸며 완벽한 정착을 이루어냈습니다. 이후 진행된 ‘LOVElution’의 기자 쇼케이스를 통해 10만 장 유지 조건은 초기 유닛인 AAA와 KRE에만 해당되는 특수한 규칙이었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등장한 유닛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트리플에스의 시스템이 본래의 대원칙인 ‘조건 없는 해산과 재조합’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10만 장을 달성하지 못했던 LOVElution과 EVOLution은 물론이고, 발매 후 10만 장을 가볍게 돌파하며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활동형 디멘션 ‘Visionary Vision(VV)’ 역시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후속 컴백 없이 아름답게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트리플에스의 디멘션 시스템은 앨범 판매량이나 성적 같은 별도의 조건과 관계없이, 하나의 활동이 끝나면 본래의 대원칙대로 해산한 뒤 다음 새로운 그라비티를 준비하는 구조로 안정되게 정착하며 K-Pop 시장에서 독보적인 유닛 시스템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리플에스(tripleS) – Visionary Vision(VV)
그러나 기획사의 의도대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안착했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소비자에게도 완벽한 정답일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일회성 디멘션’ 시스템이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돌 그룹의 핵심 경쟁력은 멤버 간의 ‘케미스트리’와 활동이 누적되면서 쌓이는 팀의 ‘서사’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트리플에스는 아무리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유닛이라 할지라도 단 한 번의 활동으로 소모해 버립니다. 최근 10만 장을 가볍게 넘기며 커리어 하이를 찍은 ‘Visionary Vision(VV)’ 마저 후속 활동 없이 강제 종료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유닛의 음악적 완성도를 이어갈 추가 활동이나 후속 활동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이 구조는, 공들여 쌓은 유닛의 정체성을 허무하게 리셋시킬 뿐만 아니라 정을 붙인 팬들에게 깊은 방황과 미련만을 남길 뿐입니다. 박수칠 때 강제로 떠나야 하는 이 냉정한 굴레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한계로 다가옵니다.
더불어, 기획사가 내걸었던 ’10만 장’이라는 구체적인 기준 역시 현재 K-Pop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를 부추기는 악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오늘날 K-Pop 시장은 과도한 앨범 초동 경쟁과 밀어내기,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무분별한 실물 음반 대량 구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만 장을 팔지 못하면 유닛이 사라진다”는 자극적인 조건은 팬들에게 순수한 응원을 넘어선 심리적 압박감과 의무감을 지우는 행위였습니다. 비록 초기 유닛에 한정된 규칙이었다고 해명했을지라도, ‘음반 판매량’이라는 상업적 수치와 ‘팀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직결시킨 전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준 셈입니다. 결국 다음 컴백이 보장되지 않는 일회성 소비 구조와 상업주의적 기준은, 화려한 세계관 이면에 소비자의 미련과 산업적 피로감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조합을 찾아 헤매는 신선함도 좋지만, 이제는 검증된 유닛의 후속 활동을 보장하여 아티스트의 안정적인 롱런을 돕는 유연한 결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사진 출처: 트리플에스(tripl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