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진짜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박찬욱 본인이 해당 영화를 대중적인 영화라고 홍보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작에서 등장한 블랙코미디 장면의 분위기는 꽤나 가볍고 직관적이었기 때문에 감독은 대중적이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중적이라기엔 상징적인 소재가 많이 등장해 영화 이해에 어려움을 겪은 관객이 많았다.

이러한 메타포에 대해 영화 팬들은 지나치게 직관적인 상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대중적인 선택을 했다 비판하며 의견이 갈린다.

이러한 의견의 불일치는 박찬욱 감독의 팬 안에서도 보여진다.

세련된 잔혹함이란 키워드는 기존의 박찬욱 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그러나 전작인 헤어질결심 부터 그의 폭력성은 약해졌기에 전작에 대한 아쉬움이 있던 기존 팬들은 폭력성의 복귀를 기대하였기에 아쉬움을 표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기생충이 성공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기생충의 경우 사회 하층민의 모습을 담고 있고, 어쩔수가없다의 경우 중산층 이상의 몰락을 다루기에 후자의 경우 공감하기 더 어려워 실패한 것으로 예상된다.

쉬이 공감하기엔 살인의 방식이 너무 잔혹하고 살인의 동기가 가벼웠던 것도 공감 실패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입상에 실패한 것 역시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줄거리

제지공장에 다니는 가장 이병헌의 실직.

재취업 실패 후 자신의 경쟁자 3명을 살해함.

경쟁자를 제거한 이병헌은 취업에 성공하는 해피엔딩.

첫인상에 관하여

영화에 대한 첫인상은 “호흡이 인상적이다” 였다.

첫번째 살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굉장히 오래걸린다.

계획을 세우고,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과정에서의 실수도 잦고 결국 자신이 죽이지도 않는다, 또한 실수 자체가 너무 웃겨서 극이 전반적으로 가벼워지는 인상마저 준다.

이부분에 있어 이병헌, 이성민 그리고 염혜란 배우의 캐스팅이 빛을 발한다.

이후 전개에 속도가 붙으며 살인까지의 시간도 짧아지고 내면 묘사도 줄어든다.

차승원을 죽이는 과정은 약간의 동요는 있지만 한번에 깔끔하게 이루어진다..

박희순을 죽이는 때에 이르러선 아내와 전화통화도 하며 차분하게 진행된다.

낮에 사전조사를 하던 이성민 때와 달리 뒤에 두명의 죽음은 밤에 이루어지며 극의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이러한 연출의 흐름이 만족스러웠다.

연출적 아쉬움이라면 아무래도 이중노출, 과하게 자주 사용된 느낌이랄까.

핍진성

저는 아무튼 그렇게 극장을 나오며 ‘역시 어쩔수가 없었나..’했다.

재취업의 수단으로 3명이나 죽이지만 말이죠.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니까 넘어가자 라며 스스로를 간단히 설득했습니다.

결국 하고픈 말도 어쩔수 없지 않다 이니 말이다.

대중의 평이 갈리는 부분도 이부분인 것 같다.

개연성, 핍진성이 다소 약해보인다.

 

 

이 부분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살인의 동기.

영화 개봉 이후 가장 인기 있던 한줄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의 살인 동기가 너무 가볍다는 것.

때문에 이부분에서 부터 마음이 떠버린 관객의 경우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겠다.

저의 경우 화분으로 박희순의 머리를 노리다 생각을 고쳐먹었을 때, 다들 아 창업을 통해 활로를 개척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꼽은 수가 당연히 유명 제지회사구나 싶었고.

그 회사만 재쳐내면 내가 성공할 수 있겠다 했다.

누가 그걸 경쟁자 머릿수라 생각했겠는가.

저는 이력서 들고 순서 배열할 때까지 본인이 최선두에 있는 조직이 아닌 수평적인 조직을 만드려구나 했다.

영화는 상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충치

이병헌은 영화 내내 치통을 앓고 있다.

구직 중인 백수이기에 치료 받을 시간은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를 미룬다.

치료 받을 ​기회가 있음에도 아내가 일하는 치과의 치과의사에겐 열등감, 질투심을 느끼기에 치료를 받지 않는다.

박희순을 만나 술을 한잔 털어넣으며 썪은 이빨을 스스로 뽑아버린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라는 속담과 정확히 연결된다.

마지막 경쟁자의 제거라는 숙원사업, 구직 중이라는 상태의 종결 등의 이유로 그의 속은 썩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빨을 스스로 뽑는 모습은 그가 취업에 성공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미련하고,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사과나무

사과나무는 범죄의 표상이다.

아이폰과 주검이 된 차승원을 밑거름으로 자라는 범죄의 결과.

이병헌의 가정에서 범죄를 거름으로 성장하는 인물은 그들의 자식이다.

아들의 경우는 그 거름에 일조하기도 했고.

이병헌은 극 내내 가족에 대해 말한다.

이때 성에 따른 역할 구분이 확실한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재취업에 성공했을 때 아내에게 가장 먼저 했던 말 중 하나가 일 그만두라는 것이었으니.

가부장적인 모습 통제적인 성격은 파티에서의 복장, 그의 취미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존 스미스 복장은 가장으로서 지배적인 성격을, 나무의 수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분재는 그의 강제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주인공은 이러한 태도를 생존 논리로 정당화 한다.

상대를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총에 맞는다.” 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인용하며.

이러한 가정 내 역할을 교육 받고 아버지와의 유대가 깊어지며 아들은 아버지화 된다.

할아버지는 돼지를 묻고, 아버지는 사람을 묻고, 아들은 아이폰을 묻고.

생존 논리는 계속해서 대물림된다.

우리는 전쟁 중이니 어쩔수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으로.

벌목기

영화는 벌목기가 나무를 무참히 베어내는 모습을 담으며 끝이 난다.

해당 벌목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무인 벌목기일지 모르겠다.

이는 주인공이 마주한 결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벌목기는 주인공이며 그가 경쟁자를 제거하는 모습은 나무를 베어내는 모습과 일치된다.

나무를 모두 베어내면 벌목기가 필요 없어진다는 점은 주인공이 장차 해고될 것이라는 미래와도 유사하다.

동시에 벌목기가 나무를 썰어내는 모습은 주인공의 딸이 첼로를 켜는 모습과도 유사한다.

주인공이 사랑하던 종이, 그 모태인 나무를 무참히 베어내는 모습은 딸 리원의 꿈 같다고 생각된다.

그녀는 “나무에 벌레가 들끓고 있다” 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범죄의 온상인 이 집에서 문을 닫은 (마음을 닫은) 그녀가 가정에 대한 복수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인 시투와 리투 (리트리버)를 자신과 떨어뜨리고, 범죄를 저지르고 가정 즉 자신을 위했다고 위안하는 모습은 그녀가 가정에게서 등 돌리게 할 이유로 충분하다.

벌레가 들끓고, 범죄의 온상이 된 나무로 된 목조주택, 그리고 가정이 나무(종이)로 유지되는 것을 떠올리면 첼로 소리와 함께 나무를 벌목하는 벌목기를 이병헌의 딸과 연결지을 수 있다.

 

어쩔수가없다

주인공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실은 “어쩔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선민에게 마트라도 가서 짐이라도 나르라는 주인공의 외침은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기 떄문.

이 영화는 어쩔수 없다며 사회체제에 순응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경쟁 사회에서 남들보다 앞서야함이 당연시 되는 사회, 이 사회의 비인간성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AI의 등장은 이 인식의 변곡점이다.

단순히 내 앞사람보다 잘한다 하더라도 안정을 보장 받지 못하는 시점이다.

결말에서 이병헌이 취직한 회사에서 그의 존재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기계에 부딫칠 뻔한 연출은 지금 얻은 안정이 결국 위협 받을 것임을 보여준다.

 

기술자

그의 어쩔수없는 선택은 제지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종이를 만지는 기술자라는 자긍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재취업에 성공한 그의 모습은 기술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지식은 종이에 관련된 것이지 로봇을 관리 감독하는 일은 아니다.

때문의 해당 직장에서 그의 역할은 사고시 책임을 돌리기 위한 병풍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어쩔수없는 그의 선택은 어쩔수 없지도 않았으며 결국 프라이드도 지키지 못한 선택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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