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소년〉 속 영원이라는 족쇄가 가둔 낭만?

 

47년이라는 세월을 견뎌내고 다시 마주한 소년이 여인에게 건넨 한마디, “보고 싶었습니다.”

백발의 할머니가 된 여자주인공과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인 남자주인공의 재회는 한국 멜로 영화사에서 눈물겹고 아름다운 엔딩 중 하나로 꼽힌다. 변치 않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신화는 그렇게 완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감동의 눈물이 마르고 나면, 냉정하고 기이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정말 그 결말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본 것일까? 아니면 ‘영원’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만들어진 잔인한 잔혹극을 목격한 것일까.

 

 


 

 

 

2012년에 개봉한 조성희 감독의 <늑대인간>은 당시 최고의 미남 배우 송중기와 미녀 배우 박보영을 앞세워 700만 명이라는 한국 멜로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상업적 성취를 거둔 작품이다. 영화는 오지에서 살아가고 있던 늑대인간과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았던 소녀가 서로 교감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영화는 성공했고 관객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껍질을 벗겨냈을 때 드러나는 영화의 결말 부분은 꽤 꺼림칙스럽다.

 

 

 

헛간이라는 공간 속 잔혹한 박제
영화의 결말에선 오랜 세월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순이(이영란)와 여전히 47년 전의 소년 상태 그대로인 철수(송중기)가 다시 만난다. 이 극단적인 시각적 대비는 얼핏 가슴 아픈 순애보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철수라는 캐릭터에 가해진 폭력적 설정으로 느껴진다. 순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삶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충분히 살아가는 동안 철수의 시간은 헛간이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 갇혀있었다. 그 속에서 철수에게 허락된 것은 순이가 남긴 쪽지를 읽기 위해 글을 깨우친 것뿐이다. 오직 한 사람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존재의 성장과 삶의 가능성을 통째로 압수당한 철수의 모습은 로맨틱을 넘어 꽤나 잔혹하게 느껴진다. 결국, 철수는 한 개인의 주체적 인물이 아니라, 순이의 찬란했던 과거를 환기하기 위해 그 자리에 혼자 서 있어야만 했던 소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는 여자주인공인 순이의 눈물을 통해 미안함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나타냈지만, 정작 떠난 자와 남겨진 자 사이의 현실적인 고뇌와 삶의 무게는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판타지적 대사 한마디로 쉽게 대체되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철수는 떠나가는 순이의 차를 바라보며 홀로 언덕에서 눈사람을 만든다. 감독이 선택한 이 엔딩은 많은 관객에게 깊은 아련함과 슬픔을 남겼지만, 동시에 굉장히 무책임한 회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7년 만에 기적처럼 재회했음에도 두 사람의 관계에는 어떠한 진전도, 현실적인 대안도 없다. 감독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순이는 다시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 자신의 안락한 현실로 복귀하고, 철수는 여전히 그 황량한 시골집에 남겨진다. 애초에 남자주인공이 47년 동안 혼자 남겨져 여자주인공만을 기다렸다는 설정 자체부터 판타지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이 장르를 택한 뒤, 두 주인공의 재회가 현실이나 세월의 무게를 깨뜨리는 결말로 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저 추억으로 급히 마무리되면서 영화가 쌓아 올린 감정의 탑은 나에게 있어서 허무한 신파로 돌아와 버렸다.

 

 

 

만약, 다른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한 때에 머무르는 영화는 절대 좋은 영화로 남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과 그리고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를 성장하게 만드는 영화다. 만약 <늑대소년>의 결말이 한 존재를 과거에 묶어둔 방식이 아닌, 두 주인공이 서로를 통해 비로소 ‘성장’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때로는 같이 있지 않아도 서로의 행복을 빌며 기꺼이 놓아주는 사랑이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장 아쉽게 다가온 부분은 절대적으로 제한된 철수의 세계였다. 47년의 세월 동안 그를 야생의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든 동력이 오직 순이를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면, 다시 만난 그 순간 철수는 헛간이라는 폐쇄된 공간이 아닌 세상 밖에 있어야 했다. 순이가 가르쳐준 한글과 언어, 그리고 따뜻한 감정을 바탕으로 철수가 다른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만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순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준 사랑이 철수를 번듯한 인간으로 성장시켰음을 확인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 ‘늑대소년을 길들인 소녀’의 서사에 더 걸맞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각자의 삶을 당당히 살아낸 두 주체로서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며,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해방’시켜 주는 결말을 상상해 본다. 그랬다면 <늑대소년>은 한 시절의 아련한 추억팔이에 머무는 ‘여성향 신파 판타지’가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한 인간을 구원하고 성장시키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때로 진정한 사랑의 영원은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놓아줄 수 있는 성장이라는 곳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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