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가운데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작품이 있다. 바로 <참교육>이다.
이것은 단순한 학원물, 복수물이 아니다. <참교육>은 무너진 교육 현장을 바로잡기 위해 설립된 교육부 산하 가상 기관, ‘교권보호국’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회 안에 끝나는 강렬한 사건들
보통 사회고발 드라마나 범죄 드라마는 한 사건을 두세 회에 걸쳐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참교육>은 다르다.
10부작이라는 짧은 구성 속에서 매 회 하나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사건의 발생부터 진실 규명, 그리고 해결까지가 한 회 안에 모두 담긴다.
덕분에 전개가 매우 빠르고 몰입감도 강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자녀의 권력을 이용한 교권 침해, 공업고등학교 내 폭력 조직 문화, 학생 인플루언서의 교사 공격, 학원과 학교가 결탁한 시험 문제 유출, 초등학교 교사를 향한 악성 민원,
촉법소년 범죄, 청소년 도박, 의대 열풍 속 성적 경쟁과 마약 문제, 교묘한 학교폭력, 마약 제조와 유통까지.
현실에서는 더 하면 더 했지 싶을 정도로 실사를 기반으로 한 사건들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나에게도 3화를 비롯해서 학교에서 있었던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참교육이 통쾌한 이유
개인적으로 <참교육>이 다른 사회고발 콘텐츠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문제를 끝까지 파고든다는 점이다.
나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콘텐츠를 볼 때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어중간하게 다룰 거라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기만 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탁상공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교육> 속 교권보호국은 다르다. 그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확인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조치까지 진행한다. 교권 침해든 학교폭력이든 범죄든 뿌리까지 추적한다.
그래서 사건 하나를 해결하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시원하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절차와 이해관계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과감하게 실행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교권보호국은 누구의 편인가
작품을 보다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교권보호국은 무조건 교사의 편을 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학생의 편만 들지도 않는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교권보호국은 교사의 편도, 학생의 편도 아닌 피해자의 편입니다.”
이 한 문장이 작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교사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학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국회의원 자녀가 등장하든, 학부모가 등장하든, 인플루언서가 등장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 “대치동 엄마들 감당할 수 있겠냐.”, “국회의원을 건드릴 수 있겠냐.”
현실에서는 위협처럼 들리는 말들이지만 교권보호국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작품 속 피해자들은 교권보호국을 믿는다.
그리고 시청자들 역시 그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게 되고, 실제 교사들 또한 그런 존재를 부러워한다.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명대사
<참교육>에는 유독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많다.
“아이가 어른을 무서워하면 세상 망한다.”
“도움의 시작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부터야.”
“너희들의 1분이 남의 1분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같이 교육과 성장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7화에서 등장한다.
“실수는 만회하면 되는데 포기하면 그건 실패가 된다.”
교권보호국 감독관 임한림이 자신의 실수 때문에 자책하고 있을 때 팀장 나화진이 건네는 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도 이 대사는 강한 울림을 준다.
나화진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팀원의 실수를 감싸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리더다.
그래서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현실에서는 왜 불가능할까
사실 교권보호국은 사적 복수에서 시작된 조직이다. 딸이자 약혼자가 죽은 사건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범인이 교권국에 직접 찾아와도 무조건적으로 분노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육부 장관과 감독관으로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래서 더욱 이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사건들을 다루고,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해결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볼수록 씁쓸해진다.
드라마 속에서는 해결되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권 침해는 계속되고, 학교폭력은 교묘해지고, 청소년 범죄는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그래서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참교육>은 단순한 사이다 드라마가 아니다.
학교와 교육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왜 우리는 늘 사건이 터진 뒤에야 움직이는가.
왜 피해자가 생긴 뒤에야 문제를 인식하는가.
왜 예방보다 사후 처리에 익숙해져 있는가.
교권보호국은 매 회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작품이 끝난 뒤에도 한 가지 질문은 계속 남는다.
대체 언제쯤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보호가 가능해질까.
어쩌면 <참교육>이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이다가 아니라 그 질문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