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슬프고 무서운 — 「기담」(2007) 리뷰
정식·정범식 감독 / 진구, 김보경, 김태우, 이동규 주연
한국 공포영화 역사에서 「장화홍련」, 「불신 지옥」 과 나란히 거론되는 명작 중 하나다.
줄거리 ※ 스포일러 포함
1942년, 경성 최고의 서양식 병원 ‘안생병원’에 여러 사람이 모여든다.
도쿄 유학파 의사 부부 동원(김태우)과 인영(김보경), 병원 원장 딸과의 정략결혼을 앞둔 의대 실습생 정남(진구), 어린 시절 사고로 다리를 저는 천재 의사 수인(이동규).
이들이 한 병원에 모이면서 세 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번째 이야기 — 공포 지수 ★★★
노인이 된 정남의 회고에서 막이 시작된다. 젊은 시절 그는 병원에 실려온 자살한 여고생 아오이의 시신 앞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를 보러 시신 보관소에 들락거리던 정남은, 그 소녀와 살며 아이까지 낳는 환영을 체험하고 알몸으로 깨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이 사무실에서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정략결혼은 자동으로 무효가 된다.
정남은 이후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아가지만 아내들이 계속 모종의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
사실 정남이 감정을 품었던 그 여고생은 바로 자신과 정략결혼이 예정된 원장의 딸이었다.
소녀에게는 따로 연인이 있었고, 결혼을 거부하기 위해 그와 동반 자살을 택했다.
죽어서도 딸이 그 연인과 맺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원장은 죽은 딸과 살아있는 정남을 영혼결혼식으로 이어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전은 영화의 마지막에 온다. 그렇게 맺어진 소녀의 귀신이 정남의 평생 내내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 노인이 된 정남은 그 사실을 비로소 자각하며 숨을 거둔다.
두 번째 이야기 — 공포 지수 ★★★★★
일가족이 모두 죽은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열 살 소녀 아사코(고주연).
실어증에 걸린 채 병원에 실려온 그녀를 돌보게 된 것은 의사 수인이다. 매일 밤 아사코의 방에는 죽은 어머니의 귀신이 나타나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사고의 진실은 이렇다. 엄마의 재혼을 앞두고 새아버지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아사코는 드라이브 중 운전석의 새아버지를 끌어안는 바람에 사고를 유발했고,
그 자리에서 새아버지와 엄마, 행인 둘이 목숨을 잃었다. 아사코만 살아남았다. 그녀는 그 죄책감 속에서 엄마 귀신이 자신을 원망하러 찾아온다고 믿으며 공포에 떨어왔다.
반전은 아사코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 찾아온다. 엄마가 죽어가며 남긴 유언이 뒤늦게 들려온다. “괜찮아, 아사코의 잘못이 아니야.” 원한이 아니라 용서를 전하러 온 것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깨달은 아사코는 그제서야 눈을 감는다. 그날 밤 씁쓸하게 병원을 나서던 수인은 아사코가 처음 새아버지를 만났던 장소에서 차에 치여 숨진다.
세 번째 이야기 — 공포 지수 ★★
도쿄 유학파 의사 부부 동원과 인영이 안생병원에 부임한다.
어느 날 동원은 우연히 아내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수술 중 환자가 휘두른 메스에 맞아 인영은 죽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인영의 환영이 계속 보였고, 부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함께 살아왔다.
어느 새벽 동원은 나비를 쫓아 밖으로 나가는 인영을 목격한다. 그녀는 나비 비녀로 간호사를 찌르고 있었다.
동원은 아내를 말리다 비녀에 찔려 쓰러지고, 깨어나 보니 피해자의 손톱 자국이 자신의 팔에 나 있었다.
동원은 자신 안에 두 인격이 공존하고 있으며 자신이 연쇄 살인범이라고 자백하는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를 결박한다.
그러나 진실은 반대였다. 1년 전 메스에 죽은 것은 동원이었고, 인영이 살아남았다.
남편을 잃은 충격을 견디지 못한 인영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생겨 동원의 인격을 만들어냈고, 연쇄 살인을 저지른 것도 인영 자신이었다.
동원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영은 나비 비녀로 자신의 목을 찌른다. “너무 쓸쓸하다”는 말을 남긴 채.
Key Point
기담은 흔히 떠올리는 점프 스케어 중심의 공포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특히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공포의 근원을 “원한”보다 “미련”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귀신들은 단순히 사람을 해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사랑, 후회, 외로움 같은 감정을 끌어안은 채 머물러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무치게 무서운 동시에, 슬프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미장센이다.
영화는 1940년대 경성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음산하면서도 아름답게 구현해낸다.
첫 번째 에피소드 중 다다미방의 문이 열리고 닫히며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영혼 결혼식 장면은 스토리 전달에 매우 효과적이면서도, 미적이다.
특히 병원이라는 공간 활용이 인상적이다. 병원은 원래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영화 속 안생병원은 오히려 죽음이 머무는 장소처럼 보인다.
이러한 미장센들이 기담만의 고전 멜로드라마와 고딕 호러가 섞인 듯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준다.
주관적 의견으로,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엄마 귀신은 가히 한국 공포영화 역사상, 아니, 전세계를 통틀어봐도 손에 꼽힐 만큼 강렬하다.
정말 귀신이 존재한다면 분명 그런 소리를 낼 것이다.
엄마 귀신의 존재만으로 기담은 공포영화계의 레전더리로 남을만 하다.
Warning Point
이 영화는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다.
분위기를 천천히 쌓아가는 서사 위주의 작품인만큼, 빠르게 몰아치는 최근 공포영화 트렌드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감정은 공포보다 상실과 미련에 가깝다.
귀신보다 인간의 감정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호러의 재미를 기대했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기담」은 반전의 순간에 공포가 아니라 슬픔이 먼저 밀려오는, 엄연한 멜로드라마 영화다.
그렇지만 방심해선 안될 것이다. 이 영화엔 “엄마 귀신”이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