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시간들〉- 영화가 아니라, ‘극장’에서 흘러가는 시간들을 향한 찬사

영화 감상을 마치고 극장에서 나올 때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잠시 이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고.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창작물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삶을 체험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평범한 학생이라도 소설 속에서는 거대 로봇의 파일럿이 되어볼 수 있으며, 게임 속에서 최강의 전사가 되어볼 수 있다. 현실은 하루하루가 크게 다를 것도 없어 지루하지만 극중 인물들의 삶에는 고난과 역경이 있다. 평생 겪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겪어본 적 없을 일들을 대리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영화는, 영화만큼은 그러한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고 느끼곤 한다. 어째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바로 떠오르는 건 영화관, 즉 극장의 존재다. 스마트폰과 단절되고 주변과의 소통이 끊긴 어두컴컴한 암실. 그런 곳에서 시선을 돌릴 여지도 없이 오직 눈앞의 스크린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환경 자체가 영화의 몰입을 더해준다. 하지만 <극장의 시간들>은 나로 하여금 극장의 가치가 그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로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야기는 허구지만, 이야기를 즐긴 시간은 진짜. 

<극장의 시간들>은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 영화다.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도 공유하지 않은 세 작품이 공통된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데 묶여서 상영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공유하는 주제는 단연 ‘극장’이다. 극장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므로 물론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영화도 포함되어 있지만, 중점은 분명히 ‘극장’에 있다. 영사기사 할아버지가 거의 그 손녀뻘로 보이는 여성에게 영사기사로서의 업무를 가르치는 도입부를 넘어 첫 번째 단편인 <침팬지>가 상영되는 순간 그것이 구체화된다.

<침팬지>는 이종필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책에서 봤던 침팬지 이야기를 가지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그 이야기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책을 다시 확인해 보니 그런 이야기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착각으로 이루어진 경험을 기반으로 작중에서 만든 또다른 작품, 즉 작중작에 악평이 쏟아지자 주인공 ‘고도’는 고뇌한다. 거짓된 이야기를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나날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던 것이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기에 의미는 있었다. 절대 의미가 없지는 않다. 주인공 고도와 그 친구들은 극장에서 만나서 친해진다. 즉 그들에게 있어 극장의 시간들은 영화를 보는 시간일 뿐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던 시간들인 셈이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보았다는 기억 자체가 인생에 있어 더 크게 남는 경우는 자주 있다. 재미는 없었지만 연인과의 첫 데이트 장소라 선명히 기억나는 영화라거나, 영화 자체는 평범했지만 감상하면서 스스로 품은 생각이 삶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거나. 이런 사례가 있다면 <침팬지>에서는 극장의 시간이 순전히 영화를 보는 시간일 뿐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나날로서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논의를 다 떠나서, 고도가 본 침팬지 이야기가 전부 허구에 망상이었다고 한들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침팬지 이야기가 완전한 허구에 거짓된 망상의 산물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가치가 있고, 그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이야기란 본디 작가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짜이지만, 인간의 삶은 진짜다. 그러나 그 가짜는 인생에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형편없고 수준 낮은 작품이라도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그 작품을 감상한 시간으로 인해 인생이 바뀔 수 있으니 세상에 의미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고도의 손에서 태어나 악평 세례를 받은 작중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자연스러움을 연기할 것.

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배우일 것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보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작품을 찾아보는 대중이 아마 더 많지 않을까. 감독과 관객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배우 역시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영화를 만들 때 제작진과 배우들이 힘을 합쳐 분투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연기는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연기 자체가 인위적인 행동을 지어내는 짓이지만 자연스러울 것을 요구받는다. 하물며 이 작품은 부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를 감독이 재차 지적하며 고치는 내용이기에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데 아직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역 배우들이 이를 해내 보였다. 촬영하는 장면에서는 정말로 한눈에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쉬는 시간에 감독과 같이 식사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그 나이대의 아이들에 딱 맞는 텐션과 말투로 이야기하니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진짜 쉬는 시간인 척 아역 배우들을 속이고 몰래 찍은 것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윤가은 감독의 디렉팅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침팬지>가 극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보여주었다면, <자연스럽게>에서는 말 그대로 영화 촬영장에서의 시간을 오려냈다. 그렇다 보니 이 3편의 앤솔로지에서 혼자만 약간 붕 뜨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나머지 두 작품은 영화와 ‘극장’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다뤘는데 <자연스럽게>에서 극장은 마지막 한 장면에만 등장하고, 그 외의 러닝타임은 대부분 영화 촬영장에서의 시간을 담는 데 할애했기 때문이다. 물론 앤솔로지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른 작품들이 죄다 서로 비슷한 것 역시 좋지 않지만 아무래도 순서가 아쉬운 감은 있었다. 차라리 <자연스럽게>가 마지막 차례로 상영됐다면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하고 납득했을 듯한데 가운데에 끼니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다만 더 생각해 보면, 관객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배우들 역시 자신들이 출연한 작품을 시사회가 진행되는 극장에서 처음 감상하곤 한다. 그러니 이것 역시 주체가 다를 뿐. 어떤 측면에서는 ‘극장의 시간들’일지도 모르겠다.

 

만남, 안전, 그리고 잠

앤솔로지 중 마지막 3번째 작품은 <영화의 시간>이다. 보통은 엔딩 크레딧이라 하여 참여한 제작진들의 이름을 영화가 끝나고 난 마지막에 보여주게 되는데, 이 작품은 다르다. 특이하게도 도입부에 전부 보여주고 시작한다. 심지어 내레이션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전부 불러 주면서. 단역 엑스트라들의 이름까지 전부 부르는 동안 오히려 알 수 없는 몰입감에 사로잡히는 걸 느꼈다.

주인공 ‘영화’와 극장의 청소부 ‘우연’은 같은 학교에 다녔고, 함께 어울려 다닌 친구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멀어진 사이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재회한 둘은 해후를 나누고, 우연의 호의로 영화는 공짜 표 하나를 얻어 영화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극장 안에서 영화는 잠에 빠지고, 다른 관객들도 모두 곯아떨어진다. 시사회라서 무대 위에 올라 관객이 전부 잠든 모습을 본 감독은 이렇게 잠이 오게 하는 영화도 괜찮지 않느냐고 말한다. 영화는 비가 내리던 꿈 속에서 곧 깨어나 우연과 함께 극장을 나선다.

 

<영화의 시간>은 <침팬지>와 비슷하면서도 결을 달리 하는 지점이 있다. <침팬지>가 영화를 매개로 삼아 극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의 소중함을 말했다면, <영화의 시간>은 ‘영화 감상’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제외하고도 극장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그것은 ‘만남’, ‘안전’, 그리고 ‘잠’이다.

동네에 한두 곳만 있다는 특성상 우리는 극장에서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옛 인연을 우연히 만나거나, 때로는 아예 새로운 인연을 마주치게 된다. 결혼으로 인해 친구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먼 춘천으로 떠났던 영화가 옛 친구이자 극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우연을 마주친 게 그 예시다. 심지어 영화는 딱히 영화를 보러 온 것도 아니고 화장실만 쓰고 나가려던 것이었는데도 이런 만남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 만남은 앞으로 이어지고 이어져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또한 극장은 그 자체로 안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피난처이자 위로의 공간이 되어주었던 윈드밀 극장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여러 극장도 그 견고한 구조와 탁 트인 공간들 덕에 임시 수용소나 민방위 대피소로 쓰이기에 적절하다. 저 정도의 위험까지 가지 않더라도 작중에서 보여주었듯 극장은 비를 피할 장소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폭우가 내려 이도저도 못하는 동안 극장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준다. 사람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극장 내에서 머물며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만날 것이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할 것이다. 이런 기능은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지만 분명 극장이 지닌 또 하나의 면모임이 틀림없다.

극장을 ‘수면 장소’로도 간주한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흔히 극장에서 잠을 자는 건 좋지 않게 비춰진다. 비싼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가서 침대보다 불편한 의자에서 자다 오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도 하고, 코를 고는 등의 행동으로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작중 영화가 감상한 작품을 만든 감독은 잠이 오게 만드는 영화가 꼭 나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는 영화를 볼 때 졸거나 자버릴 가능성을 철저히 줄이고자 하는 나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꼭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극장 내의 관객들이 잠에 빠져 다같이 수면 시간을 공유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내에서 잠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극장이라는 장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극장가의 위기라는 이슈가 불거진 지도 꽤 시간이 지난 듯하다. 해결 방법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극장의 시간들>을 보니 그러한 걱정이 적어도 내 안에서는 조금 불식되었다. 비록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극장을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더라도 여전히 극장은 극장만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고유한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현실과 2시간 동안 완전히 차단될 수 있는 이 아늑한 암실은 분명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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