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면 갈수록 독특한 전개를 선보이는 공포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영화 중에서는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그렇고, 작년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잭 크레거 감독의 <웨폰>이나 시라이시 코지 감독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가 그렇다. 공포를 역사와 결합하고, 블랙 코미디와 융합하고, 코스믹 호러가 더해지는 등 호러 영화계는 외연을 확장하려는 신선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처럼 파격적인 전개는 관객의 호불호를 타기 십상이다. 필자는 일반적인 호러 장르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에, 결과와 상관없이 이런 형태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익숙한 집밥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살목지>는 공포 영화라는 장르에 한정해 한없이 담백한 ‘집밥’ 같은 영화였다.

‘살목지’는 충청남도 예산군에 실제로 존재하는 저수지의 이름이다. 원래도 낚시 스폿이자 심령 스폿으로 유명했던 장소인데, ‘심야괴담회’ 등의 방송과 각종 유튜버들이 방문을 통해 살목지는 점차 그 으스스한 악명을 널리 떨치게 되었다. 감독은 이러한 배경을 알고 영리하게 이용해 영화의 소재로 삼은 듯하다.
<살목지>의 주인공은 인터넷 지도 로드뷰를 촬영하는 PD로, 촬영 이후 실종된 선배가 남긴 ‘살목지’ 로드뷰 사진에서 정체불명의 형체가 발견되자 재촬영을 위해 ‘살목지’로 향하게 된다. 휴일인데도 촬영을 위해 출근해야 한다는 진짜 공포를 뒤로하고 동료들과 함께 저수지 ‘살목지’로 향한 주인공은 연달아 기이한 사건을 겪게 된다.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살목지>는 지극히 전형적인 호러 영화다.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에 주인공 일행이 방문하고, 사건이 터지며 차례대로 한 명씩 사라진다. 귀신을 우습게 여기던 동료는 호되게 당하고, 혼자 다니던 동료는 죽는다. 어떤 동료는 하지 말라는 짓은 다 저지르고 다니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찝찝한 엔딩까지, 공포 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작품이다.
스토리만 클리셰적일 뿐 아니라 연출도 늘 맛보던 그 맛이다. 뒤에서 귀신이 쫓아와서 뒤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없어져서 두리번거리니 갑자기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식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스퀘어 연출을 선보인다거나. 귀신은 피부가 새하얗고,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으며, 뜬금없이 키히히히 하고 웃는다거나.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기계로는 인식되는 귀신도 물론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클리셰를 답습하면서도 <살목지>의 만듦새 자체는 준수하다. 장편영화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이상민 감독은 이처럼 익숙한 설정들이 조잡하거나 엉성해 보이지 않도록 트렌디하게 연출해냈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살목지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훌륭히 담아낸 카메라도 몰입을 돕는다.
특히 주인공 일행이 로드뷰 업체 직원이라는 컨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구성한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산길을 로드뷰의 시각에서 비추니 아찔한 긴장감이 살아난다. 또한 귀신의 특수 분장 수준은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귀신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로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맴돌 때가 제일 무섭고, 막상 등장하면 특수 분장의 어색함 때문에 분위기가 확 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살목지>는 아슬아슬하게 그 전의 선에서 멈춘 듯했다.
다만 공포 영화로서 오직 ‘공포’에만 집중했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릴 지점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유사한 작품으로는 <곤지암>을 꼽을 수 있을 듯한데, <살목지>에도 유의미한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귀신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해코지하려 한다는 상황만이 중요하다. 캐릭터들의 관계나 주인공의 과거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고, 귀신들에게도 구차한 사연 따위는 부여되지 않는다. 민간 신앙도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정도로만 등장하고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 공포 외의 요소는 모두 공포를 더하기 위해서만 활용되는 부착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충분한 공포를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겠지만, 만약 별로 무섭지 않다면 공포 컨텐츠로서도 미달이고 영화로서도 엉성한 졸작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처럼 <살목지>는 결말까지 관객에게 공포를 안겨주겠다는 한 가지 목적만으로 공포 영화의 정도(定道)를 질주한다. 아무런 장애물 없이 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것은 때때로 지루할 수 있지만, 적어도 진흙길이나 굴곡진 산길을 달릴 때처럼 불쾌하지는 않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벚꽃이 피어나는 요즘, 괜히 으스스한 공포 영화가 더 끌리는 이들에게 <살목지>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