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사랑 영화 — 「박쥐」(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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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사랑 영화 — 「박쥐」(2009)

박찬욱 감독 / 송강호, 김옥빈 주연

 


 

줄거리 ※ 스포일러 포함

 

가톨릭 사제 현상현(송강호)은 병원에서 환자들 곁에 머물며 기도를 올리지만, 사제로서의 본인에 대한 확신이 없다.

무력감에 더해 신앙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던 그는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불치병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한다. 순교라는 이름의 도피다.

실험은 실패하고 상현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음에 이르지만,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귀국한 그는 ‘붕대를 감은 성자’로 추앙받으나, 정작 그 안에서는 피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갈증이 차오르고 있었다.

살인을 원치 않는 신앙심과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구가 충돌하며 상현을 짓누른다.

 

그러던 중 어릴 적 친구 강우(신하균)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상현은 강우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강우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난다.

강우는 어머니 라 여사(김해숙)가 데려다 키운 고아였던 태주를 아내로 맞았지만, 태주의 결혼 생활은 사실상 라 여사의 통제 아래 감금되어 있는 것에 가까웠다.

상현과 태주 두 사람 사이에서 금기의 감정이 싹트고, 상현은 결국 신부의 옷을 벗는다.

이후 태주는 상현을 이용해 남편을 죽이자고 제안하고, 상현은 그녀를 학대에서 구한다는 명분으로 강우를 살해한다.

그러나 태주가 학대 사실을 지어냈다는 것이 드러나고, 상현은 분노와 사랑 사이에서 무너진다.

그는 태주를 죽이지만 곧 자신의 피를 먹여 뱀파이어로 되살린다. 영원히 혼자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반면 상현은 여전히 윤리적 경계 안에서 발버둥 친다.

라 여사가 두 사람이 강우를 죽였다는 사실을 마작 모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태주는 이들을 처리한다.

마침내 결단을 내린 상현은 자신을 메시아로 믿는 신도들 앞에 추태를 부려 그들을 헛된 믿음에서 구원하고, 태주를 데리고 떠난다.

동이 트기 직전, 바다 위 절벽. 상현은 태주와 함께 일출을 맞으며 재가 되어 사라진다.

 


 

해석

 

박찬욱은 원래 ‘뱀파이어 신부 이야기’와  에밀 졸라의 소설「테레즈 라캥」을 각각 따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두 기획을 합쳤다고 한다.

원작은 억압된 여성 테레즈와 정부가 남편을 살해하고 그 죄의식에 무너지는 이야기다.

박찬욱은 여기에 뱀파이어라는 장치를 더함으로써 원작의 죄의식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더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 부활

상현의 ‘부활’은 겉으로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주다.

기독교적 문법에서 부활은 구원의 증거이지만, 상현의 부활은 그를 신의 질서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는 빛을 피해야 하는 존재, 타인의 피를 빨아야 생존하는 존재가 되었다. 박찬욱은 이 기적을 신의 응답이 아닌 신의 침묵, 혹은 부재의 증거로 제시한다.

 

노신부 장면은 이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상현의 정신적 스승이어야 할 노신부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다며 집착을 보인다. 신앙의 지주조차 불멸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죄경을 읊는 그의 손에서 상현은 어떤 구원도 찾지 못하고, 결국 그를 죽인다. 종교적 권위는 이 영화 안에서 한 번도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 상현과 태주

두 주인공은 욕망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상현은 욕망을 인식하면서도 끊임없이 윤리적 틀 안에 가두려 한다.

피를 마셔야 하지만 살인은 하지 않으려 하고, 태주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는 모순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상현은 피를 구하기 위해 죽어가는 환자나 자살 희망자 등 ‘명분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피를 취한다.

살인을 피하려는 이 구분이 그가 끝까지 붙잡으려는 윤리적 경계다.

 

태주는 다르다. 그녀는 처음부터 억압의 피해자로 등장하지만, 뱀파이어가 된 이후 그 억압을 폭력으로 전환시킨다.

태주는 적극적으로 사냥하며, 살인 동기는 오로지 마시기 위함이다.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그녀가 도덕적으로 더 나쁜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억압에서 완전히 해방된 존재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태주는 상현이 끝내 될 수 없었던 것, 즉 신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간의 극단을 구현한다.

 

  • 엔딩

일출. 상현과 태주가 재가 되어간다.

 

이 장면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박쥐」 전체의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스스로 소멸을 선택한 것이라면, 이것은 기독교적 죄의식의 최후다.

신이 침묵했으므로 인간이 스스로 심판한 것. 반면 영원한 저주에서 벗어나 마침내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이것은 일종의 해방이다.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두 사람은 끝에서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태주가 상현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는 것 — 박찬욱이 이 영화를 ‘사랑에 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이유가 여기 있을지 모른다.

 


 

「박쥐」는 종교적 알레고리와 자연주의 문학과 장르 공포물이 하나의 몸 안에서 충돌하는, 박찬욱이 평생 하고 싶었던 두 가지 이야기를 억지로 합쳐놓은 결과물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복수는 나의 것」과 겨룰 만한 아찔할 정도의 걸작”이라 평했고,

로저 이버트는 “박찬욱이 철학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둘 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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