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두 모자무싸 | “모자무싸” 리뷰

 

“옛날엔 친했죠 똑. 같. 이. 아무것도 아니었을때”

 

 

황동만 (구교환)

“내 인생이 왜 니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지망생.

대학 영화 동아리 출신 모임인 8인회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데뷔하지 못한 인물이다.

“형편없는 영화 보고 여기저기 사이트 찾아댕기면서 신랄하게 씹어줘야지. 또 좋은 거 보면 한 이틀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면서 샘나 미쳐버려야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요.”

남이 만든 영화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주변 사람들의 영화를 평가하기 바쁘다.

그래서 모임 안에서도 늘 불편함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마냥 시끄럽고 산만하며, 자신보다 잘 된 사람을 보면 헐뜯기 바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과 말을 들여다보면 뒤처진 사람의 초조함과 압박, 수치심이 깔려 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물이다.

 

 

변은아 (고윤정)

“어떻게 가만이 있어요? 공포에 쩔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조용히 있어”

최필름의 기획 PD, 별명은 ‘도끼’다.

시나리오를 냉정하게 읽고 과감하게 잘라내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동만과 은아의 첫 대면은 시끄럽지 않다.

동만은 늘 그렇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은아는 묵묵히 끝까지 그의 말을 들어준다.

옥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존재를 확인한다는 동만의 말에, 은아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들었는데.”

그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던 말이 처음으로 가닿는 순간이었다.

 

 

“시나리오 한번 보여주세요. 궁금해요.”

동만의 눈이 희망으로 밝아온다.

모두가 무시할 때, 자신의 무가치함에 무너져갈 때, 누군가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최필름의 최동현 대표는 은아에게 동만의 시나리오를 평가하도록 지시한다.

은아는 잠시 멈칫하지만, 곧 냉정하게 말한다.

“제대로 싸우지 않던데요. 적은 적대로 빡시게 서고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빡시게 써서 빵 부딪혀야 되는데 적도 티미하고 주인공도 티미하고. 결정적으론 주인공한테 파워가 없다는 거. 사람들은 전부 파워에 굶주려 있어요. 주인공 보면서 같이 웅장하게 터지고 싶은데 여기 주인공은, 전혀.”

“어떻게든 파워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줬어야 하는데 그게 왜 안 됐을까. 쓴 사람 본인한테 그런 게 없으니까. 창조자는 자신에게 없는 걸 만들어 내지 못해요.”

동만의 빈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 순간이었다.

 

 

그 후, 8인회는 결국 황동만과의 관계를 멀리한다.

이 관계를 매듭짓는 고혜진.

 

 

“맞아, 인생 다 기분 마사지야. 어떻게 하면 기분 좋아질까, 죽어라 돈 벌어서 옷 사고, 손톱하고, 머리하고, 근데 니가 늘 기분을 망쳐. 친구들과의 만남이 내가 여유롭고 관대한 인간이라는 증명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데 너만 만나면 내가 악다구니만 남은 피곤에 쩌 인간이 돼. 알지? 너 사람들이랑 대화 안되는 거. 안하는 거. 나 100세까지 살 건데, 너 때문에 더 이상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부로 너 정리하려고. 내가 늙었어 동만아, 이제 누가 떠드는 게 귀신보다 무섭다.”

 

 

이 말을 들은 동만은, 이상하게도 은아를 떠올린다.

이 소식을 전하던 8인회 멤버들의 말에 은아는 되묻는다.

 

 

“무능이 뭔데요?”

“요리사래, 그런데 요리 못해. 교사래, 그런데 못 가르쳐. 더 해야 돼?”

“인간이래, 그런데 인간적이지 않아. 이게 최고 무능 아닌가?”

은아의 말은 간단하지만 치명적이다. 동만을 손절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그들이 지적하는 무능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모두 손절당한 동만은 그 모습을 형에게 들키고, 형의 꾸짖음에 외친다.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20년 동안 데뷔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비교당하며 살아온 동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솔직하게 내뱉는 진심이다.

 

 

은아는 동만을 다시 만나고, 동만은 묻는다.

“파워는 어떻게 장착되는 걸까요? 혹시 파워 어디서 파시는지 아실까요? 사고 싶은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막 가슴이 뛸 텐데.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서. 감독님 글 보면서 알았어요. 아, 이 감독님은 사랑하는 게 없구나.”

 

 

은아는 동만의 빈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동만의 부족함은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경험 자체였다.

이 말을 들은 후, 동만은 최필름에 찾아가 말한다.

“빛나는 것들끼리 빛나는 세상 만들어봐라. 하나도 안 빛나.”

“그리고 난 내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릴 거야. 나의 빛나는 스토리를 기대해라. 어디 한 번 막아봐라. 막아지나.”

동만의 외침에 모두가 멍해진 순간, 은아는 그의 모습을 보고 유일하게 웃는다.

내내 무표정이던 그녀가, 그의 말에 처음으로 웃는다.

아마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는 막막했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는데, 지금도 똑같이 그런데 그때랑 다른 감정이 하나 더 있다. 그들의 나약함을 목도한 느낌. 그래서, 싸워볼만 하다는 느낌?”

 

 

동만과 다시 만난 은아는 그에게 할머니표 반찬을 건넨다.

띠링, 초록불 크로스.

 

반찬은 은아가 동만에게 건네는 손길이고, 동만은 은아에게 ‘초록불’ 같은 존재다.

 

 

“당신은 날씨보다 아름답다.”

 

 

다시 만난 은아와 동만.

“감독님은 천개의 문이 다 열려있는 사람 같아요. 아직 한 개의 문도 열어보지 못한 인간이 쓴 글을 보면 지겨워 죽을 것 같은데 가끔 몇 개의 문을 열어본 사람의 글을 읽으면 눈이 뜨이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천개의 문이 다 열려있는 사람 같아요.”

“그 시나리오는 감독님 같지 않았어요. 감독님은 훨씬 멋져요. 훨씬 동물적이고 훨씬 따뜻하고”

동만을 겪어보기로 한 은아.

 

 

동만이 경세에가 남긴 악플이, 행동이 심했다고 8인회 사람들은 말하고 이에 대해 동만은,

“나 좋아하는 인간 앞에 가잖아? 나 온순해져. 심장 박동수도 떨어져. 동물이라 감각적으로 나 싫어하는 놈 기가막히게 알아. 나는 나한테 조금만 호의라도 보이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줘. 나는 리트머스 종이 같은 남자야. 나 졸라 사랑스러운 놈이야. 남이 산성이면 나도 산성. 남이 알칼리면 나도 알칼리야. 걔들이 나를 싫어하는데 형은 걔들을 뭐라해야지 왜 나를 뭐라 해?”

물론 동만의 행동이 옳은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만에게 하지말라고 하는 행동들은 8인회의 사람들이 동만에게 하고 있는 행동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무시하고, 내려치는 행동들, 동만의 행동이 자신을 향해 그렇게 보일 뿐이지 자신들이 모두 동만에게 하는 행동이 아닐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나의 호의를 보이면서 그들을 만족시켜야할까?

 

 

“침묵이 무서워요. 침묵 속에서 갑자기 진실이 튀어나올까봐. 너는 존재 가치가 없어. 악마가 그렇게 말할 것만 같아요.”

 

은아는 평화롭게 술을 마시고 있던 아지트에 돌을 던진다.

동만의 불안을 증대시키는 그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것 같았다.

 

 

“상대 해야될 게 있고 상대 안 해야될 게 있구나. 가위는 상대할 게 아니었구나. 은아씨 힘들게 하는 거랑 싸우지 마요. 상대 안 하면 지나가요 그냥”

누구와 싸울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저한테 함부로 하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고민이었어요. 피해 갈까. 꺾고 갈까. 늘 피해가자는 쪽이었어요. 근데 이번엔 꺾고 가볼까 하고요. 전 한번도 대표님이 파워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지랄맞다곤 생각해요. 그거 헷갈리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저는 얌전한 아이에요. 만만하고 약한 애 아니고. 그것도 헷갈리지 않으셨으면 해요. 혹시나 사표 낼 생각으로 막판에 질러보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만두지 않을 거에요.”

앞선 동만의 위로를 듣고 꺾어가기로 마음 먹은 은아의 말.

실제라면 쉽게 말하지 못할 말이지만 드라마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터뜨려준 것 같아서 통쾌한 장면 중 하나였다.

 

 

형과의 다툼 후 경찰서에 간 동만

직업을 묻는 경찰의 부름에 심장이 뛰는 동만, 그 옆에 나타난 은아.

“영화 감독이요. 제가 담당 pd입니다.”

 


 

 

우리는 동만에게서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를 시기했던 경험, 무시당했던 경험, 그리고 실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동안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현실의 모습을 조금 더 과장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과장일까? 우리가 꾹꾹 숨겨두고 있는 모습을 오히려 드러내, 동만이라는 인물에게 투영한 것은 아닐까.

예전의 나, 혹은 지금도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드라마를 전한다.

 


 

기획의도

사람들은 모두 ‘나는 괜찮은 인간이다!’라는 데에 인생 전부를 거는 듯하다.

인격적으로든 외모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괜찮은 인간’이고픈 욕망.

잘나서 증명해 보일 수 없다면, 망가져서라도 특별해져야 한다는 강박.

그러나 그 주장은 늘 좌절되고, 뜻대로 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그러함에도 자신의 무가치함을 가리려고 요란하게 허우적대는 인간은 왜 또 그렇게 미운지.

그런 인간을 끌어안지 못하면 나를 끌어안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인간에 대한 증오가 멈춰지지 않는다.

여기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못나가 시기와 질투로 미쳐버린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가 꼴 보기 싫어서 미치겠는 친구들.

어금니 꽉 깨물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극복해 나가려고 하는 한 인간과

역시 어금니 꽉 깨물고 그런 그를 끌어안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

 

2026년 4월 18일 ~ 5월 24일

토요일 오후 10:40~ / 일요일 오후 10:30~

JTBC 12부작

극본 | 박해영

연출 | 차영훈

출연 | 구교환, 고윤정, 오정세, 강말금, 박해준, 배종옥, 한선화,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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