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전쟁의 종말, 우리가 [흑백요리사]의 결말에 과몰입한 이유

대중문화 콘텐츠는 대중에게 단순한 오락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시청자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채소가 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해당 대사가 어디에 나왔는지 아는가? 바로 <흑백요리사>이다. 이 작품은 2024년 9월부터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이며, 한 마디로 ‘요리 계급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재야의 고수 ‘흑수저’ 80인과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 20인이 치열하게 맞붙는다. 심사위원은 백종원과 안성재.

<흑백요리사>가 공개와 동시에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는 다소 자극적인 설정에 있었다.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흑수저’와 이미 명성을 거머쥔 ‘백수저’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수저 계급론을 연상시키며, 시청자들에게 자극적인 도파민과 갈등의 서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제목을 듣자마자 “흑수저라는 워딩을 사용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방식은 대중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심사위원들이 눈을 가린 채 오직 ‘맛’이라는 본질 하나로만 평가하는 안대 심사는 이 예능이 준비한 첫 번째 반전이었다. 화려한 커리어나 플레이팅이라는 외적인 조건을 완벽하게 차단함으로써, 시청자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계급적 프레임을 연출적으로 깨부순 것이다.

 

이러한 반전은 최종 우승자가 결정되는 결말부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최종적으로 흑수저가 우승을 차지하며 완벽한 언더독의 승리 서사를 보여준다. 자극적인 수저 계급론으로 시작해 결국 약자가 강자를 꺾는 짜릿한 반전의 쾌감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단순 도파민성 예능을 넘을 수 있었던 진짜 반전은, 승자의 환호가 아닌 패자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결승전과 그 전후의 과정에서 에드워드 리를 비롯한 백수저 셰프들이 보여준 모습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품격의 서사였다. 그들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자신의 명성과 커리어가 흔들릴 수 있는 패배의 순간에도, 자신을 꺾은 흑수저 요리사의 실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을 표했다. 변명이나 얄팍한 자존심 대신, 상대의 탁월함을 리스펙트하는 그들의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결국 <흑백요리사>가 결말을 통해 던진 진짜 반전 메시지는 기득권이라는 자리가 아닌, 타인의 탁월함을 리스펙트할 줄 아는 품격이 진짜 ‘백’의 의미라는 점이다.

오늘날의 대중문화 콘텐츠, 특히 예능 장르는 점차 자극적인 갈등과 가십 중심의 소비 방식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갈등을 부추겨 조회수를 올리는 것이 미디어의 관습이 된 시대에, <흑백요리사>가 결말을 통해 보여준 반전의 서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능이라는 가벼운 포맷 속에서도 얼마든지 공정함이라는 가치를 담아낼 수 있고, 패자의 품격을 통해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건넬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흑백요리사>는 단순한 요리 서바이벌을 넘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렸던 ‘건강한 경쟁’의 의미를 재해석해 낸 반전 콘텐츠다. 흑수저의 열정과 백수저의 품격이 만들어낸 이 담백하고도 묵직한 반전은, 앞으로 대중문화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서사의 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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