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당연했던 존재가 사라지는 삶의 ‘반전’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미뮤엔토 대학생 에디터 1기 허시원입니다!

여러분은 ‘반전 영화’ 하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보통은 충격적인 반전이 숨어 있는 미스터리나 스릴러 영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반전(反轉)’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전적 정의로는 “일의 형세가 뒤바뀜”을 뜻합니다.

저는 이 반전이라는 단어가 꼭 극적이고 예측 불허한 서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당연하게 곁에 머물 것 같던 존재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의 형세가 통째로 뒤바뀌는 것 또한 인생의 거대한 반전이 아닐까요.

 

이번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어쩌면 가장 슬픈 반전을 담고 있는 작품,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입니다.

큰 사랑을 받았던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한국적인 정서로 리메이크한 작품이죠.


서로의 집이던 우리

이 영화는 쉽게 뿌리내리기 힘든 서울이라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집’이 되어주던 두 청춘의 연애부터 서글픈 끝맺음까지를 나직하게 보여줍니다.

10대라는 시절을 갓 벗어난, 20대의 초입에서 만난 정원(문가영)과 은호(구교환)는 가장 아름답고, 서툴며, 애틋하게 사랑합니다.

보육원에서 자라 늘 돌아갈 곳을 갈망하던 정원은 건축사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은호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역설적인 두려움을 느낍니다.

첫 사회에 나온 정원에게 은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안전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와 헤어지게 된다면,

정원은 다시 돌아갈 곳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죠.

당시 정원이 머물던 고시원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손바닥만했습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햇살을 손바닥만큼만이구나…”

내가 세상으로부터 허락받은 볕이 겨우 이 정도뿐인가 싶을 때, 은호는 정원 앞에 그녀가 온전히 햇살에 비춰질 만큼 커튼을 활짝 열어줍니다.

평생 정원의 따뜻한 집이 되어주겠다 약속하며, 두 사람의 눈부신 계절이 시작됩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밀린 빨래를 함께 개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응원하며

서로는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소중한 존재’라는 단어가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서로는 자신들의 일부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아마 “사랑해”도 결국 부족한 단어가 되었을 테니까요.


관계의 반전이 올 때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던 낭만은 이내 차가운 현실의 벽과 마주합니다.

정원과 은호의 꿈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꿈은 각자의 것이 아닌, ‘우리’의 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잠시 꿈을 미뤄둔 채 아르바이트와 악덕 기업의 노동을 전전하기 시작합니다.

꿈은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채 저 너머로 멀어지고, 돈은 필요할 때마다 밑 빠진 독처럼 줄줄 샙니다.

현실에 지치고 열등감에 잠식당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갉아먹는 나날들.

그 고단함은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을 내기 시작합니다.

정원의 세계를 비추던 햇살은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커튼 뒤로 닫히고

좁은 방 안에서 같이 쐬던 선풍기는 한 명에게만 향하게 되었으며

서로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던 응원의 말들은 어느새 숨 막히는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결국 정원은 매섭게 비가 쏟아지는 날, 지하철을 타고 떠나기 위해 둘만의 집을 나섭니다.

뒤늦게 놀란 은호가 빗속을 뚫고 그녀를 붙잡기 위해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옵니다.

마침내 지하철에 탄 정원을 발견한 은호.

승강장과 지하철 문틈 사이, ‘발빠짐 주의’라고 해봤자 손바닥 크기만큼도 안되는 그 좁은 틈만 건너면 정원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원의 텅 빈 공허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은호는 차마 그 발걸음을 내딛지 못합니다.

지하철 문은 닫히고, 정원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그렇게 두 사람의 ‘이별’이라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세상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교차 편집으로 보여줍니다.

갓 성인이 된 풋풋한 청춘이 아닌, ‘어른’이 되어버린 현재의 세상은 완벽한 무채색입니다.

우연히 재회한 정원과 은호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영 가라앉지 않던 이별의 앙금을 회상합니다.

그 시절 지하철역에서 이별한 뒤, 두 사람은 ‘우리의 꿈’이 아닌 ‘각자의 꿈’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왔습니다.

정원은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건축사가 되었고, 은호 역시 게임 개발에 성공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습니다.

영화에서 마지막에 은호는 서글픈 가정을 던집니다.

“만약에 우리가 반지하 방으로 이사 가지 않았더라면 안 헤어졌을까?”

“아니. 그래봤자 1,2년 더 만났을 거야”

“만약에 내가 게임 완성하는 걸 기다려줬다면..?”

“그럼 너는 게임 완성 못했을 거야.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

이미 가정이 있는 은호의 현실을 알기에, 정원은 ‘만약에’라는 모든 질문에 단호하게 이별이라는 결론을 내려줍니다.

하지만 은호의 마지막 질문 앞에서는 정원 역시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진짜 만약에, 그날 내가 지하철 탔으면..?”

“그랬으면… 너랑 계속 함께 했을 거야 영원히”

당시에는 너무나 거대해 보였던 그 사소한 문틈 사이.

그날 은호가 한 발자국만 더 뻗어 그 틈을 건넜더라면 이별이라는 삶의 반전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약에’라는 부질없는 가정 속에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 이별은 누군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놓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손을 놓아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 슬픈 확신이 들자 두 사람은 과거의 아팠던 감정을 서로 따스하게 다독입니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정말 사랑했어.”

“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미련과 후회로 가득했던 무채색의 현재는, 이 예기치 못한 재회와 온전한 매듭을 통해

비로소 찬란한 유채색으로 물들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가수 성시경의 노래 <넌 감동이었어>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그 순간을 잃는다면 내가 살아온 짧은 세월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이 가사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집’이자 ‘가족’이고, ‘영원’이 되어주었던 그 눈부신 시절을 부정해 버린다면

우리가 지나온 청춘의 세월은 너무나 보잘것없어질지 모릅니다.

비록 이별했을지라도 그 시절의 순수했던 진심을 훼손하지 않고,

마음속에 소중히 다듬어 보관할 때 비로소 둘의 사랑은 아프지 않게 완결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때의 나만의 은호, 정원이에게 뭐라 말하고 싶으신가요?

“사랑하기에 보내준다”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모순적인 문장일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은 이 문장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 이 문장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더라도, 우리의 서툰 마음은 여전히 그 찬란했던 유채색의 계절 속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미뮤엔토 에디터 허시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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