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덕 문 잠그는 컨텐츠 – 보넥도 한의원 편

아이돌과 콘텐츠 업계 모두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 공급이 매우 많아지면서, 이제 대중은 새로 나오는 아이돌과 콘텐츠를 모두 관심 있게 보지 않는다. 다른 많은 업계와 함께, 무한히 쏟아지는 선택지 속에서 원하는 것만 철저히 골라 시청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속사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자체 콘텐츠'(이하 자컨)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다양한 기획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컨은 아이돌의 매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콘텐츠 자체로서의 예능적 재미와 경쟁력까지 갖춰야 한다. 결국 주 목적은 기존 팬덤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팬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제작진은 기획할 때 특정 시청자나 팬층만을 겨냥하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컨의 다양한 기획마다 유독 결이 잘 맞는 팬들의 유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요리나 게임 같은 주제는 그룹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 또한 소재나 썸네일에 이끌려 우연히 유입되는 큰 통로가 되기도 한다. 반면 휴가 브이로그나 유닛 중심의 콘텐츠는 팀과 멤버들에 대해 꽤나 깊게 알고 있어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의 개인적인 일상을 궁금해하고 멤버 간의 케미를 잘 알고 있는 코어 팬들이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기획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팬들이 관계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팀에 더 빠져드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자컨 단골 기획인 ‘건강검진’이나 ‘체질 검사’ 같은 건강 콘텐츠는 어디쯤 위치할까. 기본적으로 팬이라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반길 만한 주제이긴 하다. 내 아이돌의 건강 상태나 관리법, 그리고 평소 쉽게 알지 못하는 정보 등을 알아가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은 이제 막 그룹을 좋아하기 시작한 초기 팬들을 붙잡아, 소위 ‘입덕 문을 잠그는’ 데 특히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최근 공개된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의 자컨 ‘WHAT? DOOR!’ 한의원 편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룹과 멤버들의 성향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에서 건강 콘텐츠를 보면 캐릭터가 더욱 선명해진다. 콘텐츠를 통해 드러나는 아이돌들의 체질이나 건강상태가 기존 캐릭터와 더욱 정교하게 연결되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 대식가이자 튼튼한 막내 이미지인 운학은 체질적으로도 건강하고 기름진 음식을 잘 소화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반면 평소 생각이 많고 그룹의 중심을 잡아주는 이미지인 성호는 주기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솔루션을 듣는다.

 

전자가 팬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운학의 이미지를 한층 더 설득력 있게 만들어준다면, 후자는 “그래, 성호는 평소에 그런 역할을 많이 하니까 저 솔루션이 도움이 되겠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례에 가깝다. 전문가의 진단이 더해지면서 팬들은 멤버들의 기존 캐릭터를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해석들이 하나씩 쌓여갈수록 멤버 개개인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 역시 자연스럽게 커지며, 특히 팬이 된 지 얼마 안 된 이들은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깊어지게 된다.

둘째로, 전문가의 동석이 적당한 텐션을 유지해 주며 자연스러운 웃긴 모먼트를 이끌어낸다. 많은 아이돌 그룹은 평소 24시간을 함께 붙어 지내는 만큼, 본인들끼리 방송을 할 때 더 솔직하고 격양된 텐션을 보여주는 경우가 자주 포착된다. 특히 보이넥스트도어는 서로에게 행하는 끝없는 장난과 친근감 있는 분위기로 종종 그 텐션이 화제가 되는 팀이다. 그러나 이러한 텐션의 아이돌들도 건강 콘텐츠에서는 본인들 역시 실제 몸 상태가 궁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는 이게 궁금해요”, “저 이런 게 고민이에요”라며 검진 자체에 온전히 집중한다. 덕분에 콘텐츠가 짜여 있는 틀을 과하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진지하게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서로의 생활습관을 고발하며 놀리는 모습이 흥미롭다. 차를 마시고 치료를 받을 때 나오는 묘한 현실감 역시 웃음을 자아낸다. 결국, 전문가라는 타인이 동석함으로써 텐션을 적당히 잡아주어 잘 진행되는 방송이 되면서도, 아이돌 특유의 예능감을 밸런스 있게 잡는 셈이다. 이러한 정돈된 분위기는 이제 막 입덕한 초기 팬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고, 부담 없이 편안하게 그들의 모습에 따라갈 수 있게 해준다.

셋째로, 각 멤버의 취약함과 서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몰입을 이끌어낸다. 평소 리더 명재현은 데뷔 직후나 그룹이 상을 받을 때 등 눈물을 자주 흘리고, 혹여 팬들이 떠날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유독 책임감이 큰 멤버로 언급돼 왔다.

그리고 실제 검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내면이 고스란히 연결된다.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긴장 상태가 이어져 손에 땀이 많고, 리더로서 주변을 계속 신경 쓰느라 쉽게 에너지가 방전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이처럼 건강 콘텐츠에서는 아이돌들이 직업 특성상 불규칙한 생활 패턴을 갖고 있거나, 타인의 평가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고충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때 이런 취약점은 본인의 입을 통해 직접 토로되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가라는 제3자의 시선을 통해 전달된다. 전문적인 설명이 더해질 때 팬들은 멤버의 어려움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대견해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이는 초기 팬들이 단순한 ‘리스너’를 넘어 멤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게 만드는 더 깊은 애정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와 같이 건강을 주제로 하는 자컨 콘텐츠는 초기 팬들에게 멤버들의 고유한 캐릭터를 납득시키고, 정돈된 예능감으로 편안함을 주며, 화려함 뒤에 숨은 인간적인 면모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무대 위 모습을 위주로 좋아하는 호기심과 호감의 단계를 넘어, 멤버들의 취약점과 현실적인 모습까지 자연스레 접하면서 오히려 팬심이 더 단단해지고 그런 모습도 안고 가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https://youtu.be/8DFiXkdFRrg?si=rPO-VizzDm9fBmc0 

 

출처: 유튜브 ‘BOYNEXTDOOR’ WHAT? DOOR! 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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