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감정 덩어리들의 이야기 |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리뷰

오늘 이야기 할 작품은 JTBC와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많은 화제를 이끌었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입니다. <모자무싸>는 지난 번 리뷰했던 <나의 아저씨>의 작가로 유명한 박해영 작가님의 신작으로, 방영 전 부터 드라마 팬들에게 특히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공개 후 넷플릭스 주간 시리즈 순위의 1위를 달성하고 최고시청률 약 5%까지 달성하는 등 흥행을 달리고 있습니다. 평가적인 측면에서는 퀄리티와 작품성에 관해 준수하거나 극찬을 날리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일부 대중들의 경우에는 과한 연출과 난해한 이야기, 캐릭터의 비호감성 등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등 호불호가 있는 작품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오늘인 <모자무싸>에 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저의 생각까지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엔 친했죠 똑. 같. 이.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의 평화 찾기를 따라가는 드라마

위 문구 처럼 이 작품은 20년째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황동만(구교환)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중이며, 그 와중에 한 때 같은 위치와 같은 출발선에 있던 ‘8인회’ 동료들은 하나둘 데뷔 하고 자리를 잡아나갑니다. 그들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들이 한 발 더 나아감으로써 여전히 제자리인 동만의 상대적 위치는 점차 바닥을 찍게 되죠. 그리고 그럴수록 동만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까대며, 8인회를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은 이런 동만을 불편해하며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재가치가 떨어질 수록 동만은 더욱 더 나대고 떠들어대며 망가져서라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이런 동만은 같은 8인회 멤버이자 친구 준환의 동생이 연구하는 “감정워치”라는 시계를 테스터로서 착용하고 다닙니다. 이 시계는 현재 사용자의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를 알려주고 긍정적일 땐 초록색을, 부정적일 땐 빨간색을 띄며, 연구소에서는 이 테스터들의 감정을 분석해주죠. 그런데 주위에 이 감정워치를 차고다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잘나가는 영화사 최필름의 기획PD “변은아”라는 여성입니다. 은아는 평소 감독들의 시나리오에 관해 직설적인 독설을 날리는 걸로 유명하며, 수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시나리오에 관한 직관적인 피드백을 받고싶어하는 능력자입니다. 그리고 이런 은아와 동만은 우연히 귀갓길에서 몇번씩 마주치며 대화를 하게 되고 은아는 동만을 궁금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동만의 시나리오를 달라고 요청하게 되며 조금씩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은아 역시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와 아픔으로 인해 상처가 많은 인물인데요, 비슷한 기억이 떠오르거나 무시를 당할 때면 코피를 흘립니다. 그리고 은아는 동만과 대화를 하면서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때론 그의 말에 위로와 에너지를 받기도 하며, 그런 동만이 정말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동만 역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시가 아닌 응원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남을 비판하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삶의 동력을 얻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서로 남들에게 받은 상처와 증오들에 관해 공감해주고 초록색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로서 점차 깊어지게 됩니다.


이상하지만 누구보다 나와 같은 인물들

<모자무싸>애서 가장 인상깊었던 요소는 바로 캐릭터라고 생각됩니다. 제목처럼 각각의 인물 하나하나가 자신의 무가치함과의 싸움을 지속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는데요, 각각의 캐릭터들은 개성이 모두 강하지만, 각자의 처절함과 아픈 상처들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많은 공감대와 위로, 어쩌면 이러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공감성 수치와 같은 치욕스러움까지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황동만 (구교환)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역시 황동만이 있습니다. 그는 20년째 감독 데뷔를 못 한 채 학원 강사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40대 무직남’인 사람입니다. 형편없는 영화를 보면 신랄하게 씹어대고, 좋은 영화를 보면 질투로 괴로워하며, 잘된 친구들 앞에서는 기어코 한마디씩 찌르고야 맙니다. 초반에는 함께 있기 불편한 진상 그 자체로 그려지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탈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차가 쌓일수록 황동만의 소란스러운 외침이 사실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존 본능이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무가치하다는 감각을 가장 크게, 가장 오래 앓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정에 가장 솔직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구교환은 황동만의 불안과 기행, 그 이면에 숨겨진 간절함을 찰나의 표정과 유연한 몸짓으로 끊김 없이 이어가며 캐릭터 그 자체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변은아 (고윤정)

황동만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무가치함을 버텨온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려진 상처를 안고도 홀로 버텨온 변은아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철저히 봉인하고, 타인의 언어를 재단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옵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 이지안, 염미정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핏기 없이 무미건조하지만 그 눈 안에 무언가 가득 담긴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변은아가 황동만이라는 인물에게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합니다.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이 다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사 중 하나인데요. 남들이 엑스표를 친 것에서 가치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변은아라는 인물의 핵심입니다. 고윤정은 절제된 감정 연기로 변은아의 대사들을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에 새기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박경세 (오정세)

황동만과 20년지기이자 소위 ‘혐관’ 관계인 인물입니다. 황동만과 한때 둘도 없는 단짝이었지만, 경세 혼자 감독으로 데뷔하며 처지가 갈린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애증이 쌓였습니다.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성취 뒤에 사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무가치함과 싸우는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황동만을 향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 전화 고백 장면은 큰 임팩트 없이 대사를 자연스럽게 소화한 것만으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오정세 특유의 완급 조절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고혜진 (강말금)

박경세의 아내이자 영화사 고박필름의 대표입니다. 경세의 감정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내며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인물로, 두 사람은 공감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현실 밀착형 부부 관계를 보여줍니다. 경세가 자존심이 상해 분을 삭이지 못할 때 그의 눈에서 날아온 총알을 아무렇지 않게 쳐내는 상상씬이 바로 이 부부 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으며, 강말금의 미세한 표현력이 캐릭터에 깊이를 더합니다.

황진만 (박해준)

황동만의 형으로, 동생을 위해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인물입니다. 삶을 제 손으로 끝내고 싶어 하는 우울감과 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데, 거칠지만 깊이 있는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황동만과의 형제 관계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애틋한 서사 중 하나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들은 극 전반의 정서적 무게를 떠받치는 축이 됩니다.

오정희 (배종옥)

국민 배우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불안과 죄책감을 감추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장미란의 어머니이자, 변은아와도 얽혀 있는 인물로 극의 서사에 묵직한 깊이를 더합니다. 성공과 명성이 무가치함을 완전히 봉인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장미란 (한선화)

오정희의 딸로, 배우입니다. 박경세의 영화 주연으로 혹평에 시달리고, 어머니의 통제 속에서 심리적으로 마비되어가며 스스로에게 엑스표를 친 인물입니다. 그런 장미란에게도 변은아는 동그라미를 쳐주는데, 그 과정에서 거침없는 존재감으로 예측 불가한 케미를 만들어내며 극의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최동현 (최원영)

변은아의 직장 상사이자 이 드라마의 빌런 격 인물입니다. 강약약강의 전형이면서도 틀린 말은 하지 않는 얄미운 캐릭터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현실감으로 통쾌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안깁니다. 극도로 싫은데 반박이 어렵다는 점이 이 인물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비현실적인 연출

이 작품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연출이 정말 독특하고 인상이 깊었는데요. 애니메이션처럼 비현실적인 효과를 사용한다거나 연극을 보는 것 처럼 의도적으로 설계된 공간과 미장센을 활용하여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직관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나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화에서 동만이 집에 홀로 앉아 좌절하고 있을 때 “세상이 망했고 안 망햇고의 차이는 날씨가 있고 없고의 차이.” “어떤 날씨든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난 지금 어떤 날씨를 만들까?”라는 생각에 잠기는 장면에서 어둡고 칙칙한 하늘에 빛이 환히 나기 시작하더니 동만의 방에 풀과 꽃잎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며 동만은 어느새 어느 화창한 숲에 잇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동만의 시나리오를 읽던 은아의 머리에도 창가를 통해 빛이 새어오르게 되죠. 또 박경세(오정세)와 고혜진(강말금)의 대화씬에서 역시 혜진의 직설적인 한마디에 자존심이 상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혜진을 바라보던 경세의 눈에서 총알이 튀어나갑니다. 그치만 혜진은 그 총알을 별거 아닌 듯이 손으로 쳐내며 할 말을 이어나가고 경세는 당황하고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연출들이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연출이기도 했고 이런 연출 덕분에 인물의 감정선이나 캐릭터들의 개성 및 관계성을 몰입갑있게 드러내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어두운 드라마의 분위기에 이런 디테일한 연출들이 유쾌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고도 느껴졌습니다.


<모자무싸>와 싸우고 나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1,2화를 보고 많은 대중분들이 황동만이라는 캐릭터에 비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작품의 플로우가 난해하고 어두워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하였는데요. 저같은 경우도 원래는 주인공에게 동화가 잘 되는 편이지만 황동만의 경우에 큰 몰입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해영 작가님의 작품들을 너무 인상깊게 봐서 기대를 많이 했으나 초반의 내용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아서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치만 점차 시청할 수록 인물들의 과거와 내면을 저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인물들간의 서사나 개인적인 과거에 대한 공감을 점점 더 깊게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선과 악이 없다는 것인데요, 물론 주인공인 동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최필름 대표, 박경세, 그 외 8인회 인물들, 마재영 등의 밉고 짜증나는 캐릭터들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동만의 입장에 몰입하며 보다가도 이 각각의 인물들의 입장도 이해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쫓기도 하고,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꺼려하기도 하고, 내 성공을 위해서 조금씩은 이기적으로 굴며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만의 캐릭터가 초반에 시청자들의 비호감을 사기도 했으나 결국 그의 아픔과 열정에 공감하게 되는 것처럼, 각각의 캐릭터들의 다양한 면모와 이야기들을 보여주면서 이 인물들의 내면과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강점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저는 이 드라마가 조금씩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간들이 모두 감정덩어리 같다는 은아의 대사가 정말 깊은 공감이 되었는데요. 각자만의 방식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겉으로는 포장되어있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욕망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저 스스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에 비호감으로 바라봤던 동만에게 결국에는 우리도 그와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것이 애초부터 의도된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를 통해 드라마를 다 감상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저 스스로에 대한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던 것 같고 이러한 무가치함에 관해 더욱 더 솔직하게 직면하고 극복하겠다는 용기와 이에 맞써 싸우기 위한 가이드를 남겨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길거리를 보면요,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게 아니에요.

거대한 ‘감정 덩어리’들이 걸어다니는 것 같아요.

걸음걸이 하나, 표정 하나에 그 사람의 총체적인 감정이 다 배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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