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2025) – 메뉴가 많은 집은 피해라

〈미키 17〉의 소재는 매우 흥미롭다.

복제인간, 멀티플, 그리고 새로운 행성으로의 도약까지, 하나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끌고 갈 매력적인 설정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 다채로움은 동시에 약점이 되었다.

영화는 너무 많은 소재를 벌여놓은 탓에 그 어느 것에도 깊이 집중하지 못한다.

영화 후반, 무엇이 영화는 소재들을 급하게 갈무리하기 시작하고 그 시간적 아쉬움은 영화를 평면적으로 만들었다.

이번 리뷰는 영화 결말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고자한다.

줄거리

〈미키 17〉(2025)은 봉준호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각색한 SF 블랙코미디다.

빚에 쫓겨 지구를 떠난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친구 티모(스티븐 연)를 따라 얼음 행성 니플헤임을 향하는 식민지 원정대에 ‘익스펜더블’ 자격으로 합류한다.

익스펜더블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돼 죽으면 신체가 그대로 다시 프린팅되는 일회용 인간이다.

17번째로 죽었다 돌아온 미키는, 자신이 이미 죽은 줄 알고 새로 출력해 둔 미키 18과 마주친다.

동일 개체가 둘 이상 존재하는 ‘멀티플’은 금기.

둘은 서로의 존재를 숨기며 동거하고, 그 사이 식민지 지도자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은 토착 생명체 ‘크리퍼’ 절멸 계획을 밀어붙인다.

두 미키와 연인 나샤(나오미 아키), 그리고 크리퍼가 얽히며 영화는 마셜의 몰락과 익스펜더블 제도의 종식이라는 결말로 향한다.

 

주제의식

미키 17은 인간 존엄에 관한 이야기다.

봉준호는 늘 영화로 사회에 질문을 던져왔다. 환경 파괴를 다룬 〈괴물〉과 〈옥자〉, 모성애를 심문한 〈마더〉, 계급의식을 파고든 〈설국열차〉와 〈기생충〉처럼, 그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사회 현상과 강하게 맞물린다.

〈미키 17〉도 다르지 않다.

수없이 죽고 다시 출력되는 미키들은, 현대 사회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산업재해 속에서 갈려 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야말로 미키 17에 정확히 대응된다.

감독은 이 문제의식을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으로 한 번 더 강화한다.

이미 존엄을 잃은 이들에게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조건을 더해, 존엄을 아예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그리고 결말에서 인간 프린터를 폭파하며 그 존엄을 회복시키며 급작스럽게 해피엔딩으로 복귀한다.

이는 그의 이전 작품과 대조적인 부분이다.

봉준호는 불쾌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불쾌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원인, 그 속에서 갈등하는 입체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맛있는불쾌함을 만드는 감독이었다.

이번 작품이 상업영화를 표방하며 할리우드에서 개봉했기 때문에 그의 장점이 다소 퇴색된 느낌이었다.

 

가령 미키 17과 18이 나샤 앞에 동시에 등장했을 때, 다른 영화였다면 이 시점은 영화의 위기 단계로 영화의 국면이 바뀌었을 장면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를 블랙코미디와 함께 가볍게 넘긴다.

복제인간 사이의 성격 차이 역시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기술의 불완전 정도로 처리할 뿐, 역대 미키들의 성격이 일관적이지 않았다는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소재를 넓게 펼치는 과정에서 서사를 이어갈 동력은 약해졌다.

영화는 니플헤임이란 외계 행성으로 나가게되는 경위, 멀티플이 문제가 되는 이유, 기타 설정들을 설명해야만 했다.

영화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에 배경 설명을 설명하는 동안 갈등은 더 단순해졌다.

케네스 마셜은 누가 봐도 악역이며, 특정 정치인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만들기에 큰 부연 없이도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설명 없이 즉각 악하다고 읽히는 악역인 만큼 캐릭터는 더욱 평면적이었다.

배우의 열연은 얕은 설정을 풍부화시켰다.

그러나 백인 남성에서 흑인 여성이란 손쉬운 대체는 영화 전체를 평면화 시켜버린다.

또한 결론에 있어 마셜의 사망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나샤의 집권, 18의 사망으로 인해 간단히 멀티플 문제가 해결되어 영화의 깊이감에 아쉬움을 남겼다.

너무나도 편리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작위적이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전에 결말을 내버렸다.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크리퍼의 존재다.

〈괴물〉과 〈옥자〉, 그리고 공벌레를 적당히 섞어 만든 듯한 외형은 나름대로 귀여운(?) 면이있었다.

(나름 굿즈도 나왔다)

그러나 굳이 외계 생명체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크리퍼가 없더라도 인간 존엄이란 소재를 다룰 동력은 충분했다.

단순히 외계 행성으로 떠난 인류가 맞이한 공포 정도의 역할 밖에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퍼는 사회를 이룬 고등 생명체이자 온건한 종족으로 그려진다.

나름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구성한 외계 생명체들, 그러나 그들의 사고방식은 인간과 너무 유사하다.

외형부터 인간과 철저히 구별되는 생명체를 만들어 놓고는, 옥자를 연상시키는 대형 포유류의 슬픈 눈망울로 감정을 끌어내 설득하는 것, 이를 통해 인간 존엄이 생명 존엄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그러나 내게는 그 정도로 확장되지 못하였고, 오해 때문에 갈등이  생긴 외계생명체 정도의 피상적인 소재로 마무리 되었다.

대안적 결말

나는 크리퍼가 복제되었다면 훨씬 흥미로웠으리라 생각한다.

마마 크리퍼가 조코를 품에 안고 있는데, 연구원이 한 크리퍼를 안고 조코라 칭하고 마마 크리퍼가 이를 목격한 후 당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인간을 복제하는 것은 그만두었지만, 타 종족의 경우 윤리적 기준이 관대한 인간의 악함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멀티플 상황에 크리퍼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보는 것은 꽤나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다.

혹은 조코가 아닌 마마 크리퍼를 복제된다면?

원작에서 크리퍼가 하이브 마인드를 지녔다는 점에 주목하면, ‘의식을 공유하는 종족에게 복제품은 통제 가능한가’라는 질문까지 열린다. 나아가 마마 크리퍼를 복제한다면 두 개의 하이브 마인드가 생기는 셈인데, 그로 인한 혼란을 암시했다면 관객은 극장을 나설 때 훨씬 풍부한 여운을 안고 나왔을 것이다. 미키 17과 18이 그러했듯, 마마 크리퍼 1과 2 간 인간을 대하는 가치관이 서로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결말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크리퍼가 등장한 이유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 체계를 가진 외계 생명체를 설계했음에도 인간적으로 표현하느라 놓친 외계 생명체라는 설정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결말은 봉준호 식 불쾌한 결말과도 부합한다.

니플헤임에 들어가 크리퍼를 몰아내는 인간들의 모습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내쫓던 백인 식민지 개척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식민제국이 가져온 기술은 식민지 내 갈등을 조성해왔다.

크리퍼 간 내부분열이 일어나는 모습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과도 부합하며 영화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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