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2026) – 캐비어 알탕

 

 

부산행, 얼굴 등의 작품을 흥행시키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만족시킨다 평가 받는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좀비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부산행과 겹쳐보인다.

그러나 부산행이 개별 좀비와의 물리적 사투를 다루었다면 군체는 군체의 장과의 수싸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장르적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해당 리뷰에는 영화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줄거리

체인스 바이오 컨퍼런스에 참여한 권세정(전지현 분).

그러나 체인스 바이오 회장이 서영철(구교환 분)에 의해 감염된다.

개체간 정보를 공유하는 집단지성을 띠는 좀비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비들은 진화한다.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의 물리적 진화와 입간판과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지적 진화.

정부는 감염이 발생한 건물을 폐쇄하고 건물 안에선 생존자들과 좀비와의 혈투가 이어진다.

건물 째로 격리를 시도하는 정부를 상대로 생존자 일행은 서영철을 확보해 옥상으로 향하고자한다.

서영철 스스로 백신을 맞았다 주장했기에 그를 확보해 구조대를 유도한다면 건물에서의 탈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서영철을 제거하면 좀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권세정.

하지만 정부는 여론을 이유로 사살을 거부하고, 권세정은 결국 혼자 그를 막으러 나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차별점은 좀비의 집단지성이다.

기존의 좀비는 뇌사 등의 이유로 식욕이란 본능만 남아있다.

그러나 군체의 등장하는 좀비는 황색망사점균을 모티프로 한다.

황색망사점균은 뇌도 신경도 없는 단세포 생물이나 세포간 정보를 공유해 집단지성을 통해 먹이까지의 최단경로를 스스로 찾아낸다.

군체의 좀비들도 이와 유사하게 개별적으로는 단순한 공격 본능만 가지고 있지만, 집단으로 연결되는 순간 학습하고 진화한다.

좀비는 집단지성을 통해 진화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정보를 공유 중인 좀비들

 

클리셰 비틀기 – 시간

좀비 사태가 시작되자마자 권세정의 전남편 한규성(고수 분)이 죽는다.

어린 딸이 있고, 곧 가족과 함께 이민 갈 예정이라는 정보 그리고 이타적이며 정의로운 성격을 지닌 인물이기에 그의 죽음은 예상된다.

그는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지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죽었기 때문이다.

클리셰를 맥거핀처럼 활용하여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네트워크 전쟁 – 알카에다

권세정은 네트워크를 구축한 집단 지성에 맞서기 위해 생존자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단체 메세지 방을 만들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고, 통제실의 CCTV를 확보해 군체와의 정보 싸움에 대응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라크 전쟁 초기 미군이 알카에다와 벌인 전쟁과 비슷한 양상을 띈다.

미군은 결정권을 진 지배자를 처치하면 구조가 무너져 조직이 와해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알카에다는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를 띄고 있어 빈 라덴을 사살하고, 중간 간부를 제거해도 정보 공유에 지장을 겪지 않았다.

때문에 조직이 붕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군 역시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해 대응하며 네트워크 조직과 네트워크 조직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소규모 특수부대를 투입하고, 조직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영화는 좀비물이란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 현대 전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소통의 불완전함에서 일어나는 비극

서영철이 권세정에게 준 컨퍼런스 초대장에 적힌 문구다.

그가 집단 지성 연구에 집착하게 만든 원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사람은 완전할 수 없기에 서영철은 군집 지능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서영철을 확보해 옥상으로 나가는 도중 생존자 그룹 내 내부분열이 일어난다.

통제실에 남은 인원을 구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에 대해서 말이다.

이러한 소통의 불완전함이 생존자 그룹의 생존 확률을 떨어뜨린다는 점은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부합한다.

 

하이브 마인드, 군집 지능(Swarm Intelligence, SI)

좀비 군체를 이끄는건 서영철이다.

다수를 지배하는 하나의 정신,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저그가 대표적이다.

동시에 좀비들은 군집 지능을 가지고 있다.

입간판을 공격하거나, 향수에 대한 정보를 얻은 한 개체의 정보를 군집 전체로 공유한다.

개별적으로는 단순히 사람을 공격할 뿐이지만, 학습 및 공유를 통해 더 지능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AI

영화 내 이러한 설정은 AI 알고리즘을 떠올린다.

군집지능은 실제로 ACO(개미 군체 알고리즘)와 PSO(입자 군집 최적화)에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군집 지능과 AI 간의 연관지을 수 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의 좀비 앤트밀.

앤트밀은 페로몬에 의한 정보 교류의 오류로 인해 개미들이 서로의 뒤를 쫓으며 죽을 때까지 원을 그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영화의 최종부에서 좀비들은 앤트밀을 돌기 시작한다.

권세정이 군체들과 비슷한 옷(피와 점액질로 오염된)을 입자 군체들은 권세정을 식별하지 못한다.

때문에 서영철은 권세정의 옷에 대한 정보를 직접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좀비들의 데이터가 오염되어 권세정의 옷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앤트밀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AI의 메아리방(Echo Chamber) 현상과 모델 붕괴(Model collapse) 현상과 유사하다.

서영철이 개입하기 전까지 군체들은 군집 지능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병렬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서영철이 직접 지시하기 시작하며 데이터가 오염되기 시작한다.

특정 인물을 죽여라 같은 특정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편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학습을 계속하며 모델 붕괴, 즉 출력의 다양성이 줄어든 것이다.

모델 붕괴가 일어났을 때 특정 패턴을 반복한다는 점은 앤트밀과 맞닿아 있다.

앤트밀을 강제로 풀자 좀비들을 초기화 되고(이유는 불명확하지만), 그러한 좀비를 통제하는데 실패해 서영철은 죽게 된다.

이러한 결말은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린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영역인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서영철 역시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생명, 진화에 개입하고 이를 인간에게 주입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서영철이 불 타 죽는 모습은 신에게서 빼앗아온 진리를 감당하지 못한 인간의 최후라 해석할 수 있다.

 

영화의 소재는 이처럼 다양한 감상을 남긴다.

그러나 영화의 완성도 측면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생존자 그룹에는 학교폭력 가해자 둘과 피해자 한명이 있다.

여성 가해자가 영화 내 지속적으로 생존자 집단을 위험에 빠뜨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녀를 구해낸다.

반면 가해자는 위기상황에서 피해자를 좀비에게 인질로 던진다.

결국 좀비가 된 피해자에게 먹히며 복수에 성공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피해자의 마음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왜 그녀는 가해자들을 살려줬을까.

어쩜 그렇게 침착하냐는 가해자의 질문에 “너네랑 있는게 더 지옥이었으니까” 라 대답한다.

이 흐름이 전체적으로 조악하다.

학교 폭력을 이슈로서 소비했다는 인상을 준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갱생 불가능한 절대악, 피해자는 순수선이자 침착함을 유지하는 지성인으로 다루자 캐릭터는 평면화되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훼손한다.

군체, 집단지성 같은 영화적 맥락와 전혀 연관성이 없어 이부분은 더욱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지옥이었으니까 같은 유치한 대사는 자주 등장한다.

구조대가 오지 않을 것이란 경찰의 말에 “내가 낸 세금이 얼만데!”라는 대사, “나 메달리스트 출신이야!” 같은 대사들은 몰입을 해친다.

반면 하반신 마비를 겪는 최현희(김신록 분)과 그의 남동생 최현석(지창욱 분)의 경우 어색하지 않았다.

부상, 장애 등의 이유로 거동에 제한을 겪는 인물과 그를 구출하기 위한 내부갈등은 장르의 클리셰로 납득되기 때문이다.

 

개연성

개연성 부분도 어설프다.

영화 내에서 혼란을 겪는 이유는 서영철이 스스로 백신 접종자라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제압의 대상이자 구조의 대상이 된다.

이 부분이 다소 어색하다.

테러를 일으킨 서영철이 백신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서영철은 영화 내내 백신 레시피 보유자가 아닌 백신 접종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백신 접종자를 통해 백신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백신의 종류에 따라 접종 후 흔적이 사라져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흔적이 남더라도 원본 설계를 복원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백신이 어떤 몸에 어떤 반응을 일으켰는지 알 수 없기에 백신 접종자라는 점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설령 서영철과 함께 구조에 성공하였더라도 그들을 건물에서 구출 시켜줄 지도 의문이다.

코로나 사례를 떠올려보자.

코로나 초기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다는 이유로 2주간 격리 하지 않았는가.

영화에서 하루동안 이루어진 원인 불명의 감염사태에 대해 정부가 그들을 겸사 같이 구조해준다 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편리해 보인다.

 

군체는 소재의 선정, 그리고 확장성에 있어서 독특하다.

그러나 설정상의 완성도, 개연성, 고증 등에선 명확한 한계를 보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앤트밀과 프로메테우스 등의 해석은 내 해석으로 연상되는 것에 가깝지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좀비 장르에 관심있는 사람, 있었으나 반복되는 설정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참신한 소재라는 좋은 재료로 만든 어설픈 요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흑백요리사에서 최현석 셰프는 캐비어알밥을 만들었다.

좋은 재료와 완성도 높은 요리, 그의 도전은 높은 재주문율과 함께 인정 받았다.

그렇다면 군체는 실패한 캐비어 알탕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재료를 끓여버려 그 맛을 해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해당 사진은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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