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독립영화인 <장손>에 대해서 분석해 보려 합니다.

명절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시나요?
바쁘게 흩어져 살던 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하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풀어내는 중요한 날이죠.
그러나 요새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등장할 만큼 그 자리를 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가족이 어째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타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왜 이토록 아픈 것일까요.
이를 다룬 것이 바로 오정민 감독의 영화 <장손>입니다.
두부공장 집안 : 압력으로 빚어낸 반듯함

영화 <장손>은 가업인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3대 대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제삿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공장 운영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장손 ‘성진’이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일을 기점으로 서로의 감정과 갈등이 뒤엉켜 있던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장손의 결심은 갑작스레 그 엉킨 실들을 자르게 되고,
갈등과 결핍의 실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 가족의 모습은 그들이 만드는 ‘두부’와 꼭 닮아 있습니다.
두부는 개개의 형태가 뚜렷한 콩들을 간 다음
몽글몽글해진 두부를 틀에 부어 강한 압력을 가하게 되면,
우리가 아는 네모진 형태의 두부가 완성되는데요.
이 가족 역시 가부장제라는 틀이자 압박 속에 각자의 희생을 담보로 형태를 유지해 왔습니다.
겉보기엔 깨끗하고 반듯하지만, 사실 두부는 작은 힘에도 쉽게 뭉개지고 부스러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1대와 변화를 꾀하는 2대,
그리고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3대 장손의 갈등은
세대를 가로질러 얽혀 있습니다.
더욱 서글픈 것은 이 담론에서조차 소외된 여성들의 존재입니다.
공장이 돌아가고 제사가 치러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여성들의 노동 덕분이지만,
그들은 정작 가족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늘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즉, 이런 가족이라는 두부는 서로가 서로의 압박에 눌려 반듯한 모양을 유지하지만,
결국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두부는 뭉개지고 맙니다.
가부장제의 폐해 : 가해자 없는 가해
위에서도 살폈듯이 이 영화는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박힌 전통적 집안의 상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을 만큼 모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는 사실 ‘절대적인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법대에 가라는 어른들의 말에 따랐고, 결국 다시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지켰음에도 평생 인정받지 못한 결핍을 안고 사는 2대 아버지.
그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꿈은 이름조차 꺼내보지 못한 고모들.
가문의 유산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배우라는 자신의 꿈 사이에서 짓눌린 3대 장손 성진.
그리고 임신한 몸으로도 무거운 가사 노동을 묵묵히 감내하는 성진의 누나까지.
심지어 영화의 끝자락에선 가족을 억압하던 1대 할아버지조차, 그 시대가 체화시킨 가부장제라는 틀에 갇혀 살아온 또 다른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서로를 분명 사랑하고 아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가부장적 구조는 각자의 결핍을 사정없이 후벼팝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결국 가부장적 현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안주하며,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부장제의 폐해를 미디어를 넘어, 우리 현실 속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 안에서도 여전히 목격하곤 합니다.
영화처럼 직접적인 억압도 존재하지만, 우리 의식 속에 전제되어 무심코 사용하는 어휘 안에서도 간접적인 가부장제의 잔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은 여전히 가부장적 세계관과 공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최근 가부장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담론들이 세대 간, 성별 간의 혐오로 번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특정 성별이나 세대에게만 유리한 주장이라거나 혹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적 비약으로 치부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 담론의 본질은 결코 특정 대상을 잡아 비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을 욕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이의 위계를 나누고 관계를 파괴하는 ‘구조적 폭력’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서로를 향한 맹목적인 비난이 아닌, 개인들의 행위에 대한 건강한 비판으로 담론의 방향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개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틀로 작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남성일수록 더 강한 구조적 권력과 힘을 보유해 왔습니다.
따라서 위계의 상단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들이 먼저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고, 내면화된 가부장적 관성을 성찰하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힘을 가진 이들의 변화가 선행될 때, 비로소 견고한 구조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첫 번째 변화는 내 안의 어휘와 인식 속에 숨어 있는 가부장적 그림자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일일 것입니다.
구조의 피해자가 다시 타인에게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그것이 진정한 변화이자 우리 사회 성찰의 시작입니다.
영화 <장손>은 누구 한 명을 가해자로 지목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그 구조 안에서 서로를 짓누르며 상처 입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그 압력을 덜어내고, 네모반듯한 모양이 아닐지라도 각자의 온전한 모습으로 마주 앉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영화 속 가족뿐만 아니라, 명절마다 마음 한구석이 체한 듯 답답했던 우리 모두에게 이 영화가 해독제가 되길 바라며
이번 영화 해석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