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나무’로 읽는 자본의 구조와 개인의 의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2025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개인적 해석을 기록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나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황, 환경에 의해 떠밀렸을 때

혹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상황이 자신의 탓이 아님을 변명하고 싶을 때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어쩔수없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변명? 체념?

제가 바라본 어쩔수없다는 변명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체념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체념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구조(환경 등)의 결과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습니다.)


줄거리

25년 동안 제지 산업에서 일해 온 ‘만수’(이병헌)는 아내 미리와 두 아이, 그리고 반려견들과 함께 안정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일은 그의 직업이었고, 그 직업은 곧 그의 세계였지요.

그러나 어느 날, 회사의 구조조정에 의해서 직원들은 해고를 통보받습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자리에서 밀려나는 순간, 그의 삶을 지탱하던 질서는 무너진 것입니다.

결국 그는 경쟁 제지 회사 ‘문 페이퍼’를 찾아갑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지만, 돌아온 것은 기회가 아니라 모욕이었습니다.

그렇게 만수는 1년 넘게 전망 없는 일을 하면서 여러 면접을 보러 다니고, 힘들게 얻은 집을 잃을 위기에까지 처합니다.

그렇게 만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만수와 나무

만수는 25년간 제지회사에서 일해왔습니다.

그가 만드는 것은 ‘종이’이고, 그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야 합니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특별할 것 없는 산업의 논리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계약서를 쓰고, 종이를 소비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 과정에서 베어지는 나무에 대해 매번 윤리적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감독은 이 만수에게 ‘분재’라는 취미를 부여합니다.

그는 식물을 아끼고, 새집을 얻자 온실을 꾸밀 만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식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식물을 베어내는 산업에 종사한다.

이 대립은 분명 의도된 설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 대비에 크게 놀라지 않는데요, 현실에도 충분히 존재할 법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나무(생명)를 베어내는 행위를 산업구조 속의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무의 죽음은 종이의 탄생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고, 그 전제는 더 이상 비극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직원과 제지회사

구조조정이 예고되자 만수는 이를 막기 위해 CEO에게 연설을 준비합니다.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한다’고 표현한다면서요?”

“한국어로는 ‘모가지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 도끼로 저희 직원들의 목을 치는 행위가 해고입니다.”

직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가정을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생계이지요.

따라서 해고는 단순한 인사 조치가 아닌, 생존의 박탈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만수의 말은 끝까지 전달되지 못한 채, CEO는 그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도끼’의 이미지입니다.

직원들은 나무를 도끼질해 종이를 만들며,

기업은 그 직원들을 도끼질해 구조조정을 진행합니다.

베어지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방식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의 해고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영화는 이를 단순히 어떤 ‘악덕 경영의 문제 고발’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기업 역 생존을 위해, 파산을 피하기 위해 하는 어쩔 수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나무를 베는 직원도, 직원을 베는 기업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움직입니다.

개인들을 둘러싼 구조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게 됩니다.


만수와 그가 저지른 범죄

결국 만수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그는 한 명씩 경쟁자를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직원들의 해고를 막겠다며 연설을 준비하던 사람,

“인간미 있다”라고 들을 만큼 직원들에게 맘쓰던 만수는

왜 결국 자신과 동일한 상황에 처해있는 실직자들을 살해하게 된 것일까요?

여기서 ‘인간미’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사람다움’은 따뜻함인가요, 연대인가요,

아니면 생존 본능까지 포함한 것일까요.

나무를 베는 직원도, 직원을 해고하는 기업도, 경쟁자를 제거하는 만수도

결국 모두 ‘먹고살기 위해’ 움직입니다.

자본이라는 구조 속에서 생존은 도덕보다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가 일으킨 범죄는 일탈이라기보다

그를 둘러싼 구조가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처럼 표현됩니다.

사람들은 만수가 경쟁자 제거라는 옵션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이미 극단으로 좁혀져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겨누는 곳

이 글의 목적은 영화에 비춰지는 요소들의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더 옳은지를 따지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그 판단 자체를 넘어서, 보라고 합니다.

자본이 생존의 전제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의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이유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부상하는 의대에 대한 인기, 그 이유는 바로 자본, 돈입니다.

현대 사회의 삶에서 돈은 더 이상 내가 추구하는 삶을 위한 부자재가 아닙니다.

돈이 곧 목적이고 내가 추구하는 삶이 돈에 딸려가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어쩔 수 없다’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자본의 구조가 개인의 선택지를 잠식해가는 과정에 대한 고발이기도 합니다.

즉, 구조에 의한 개인의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정도.

그 정도가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자, 이번 글의 목적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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