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한 최초의 경험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분명히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설국열차>다.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던 날은 사소한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기억나곤 한다. 내게는 <설국열차>를 처음 본 날의 기억이 그렇다. 당시 12살밖에 안 됐던 나는 간만에 우리 집에 들른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사촌 형제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고, <설국열차>와 만났다. 당시 한창 흥행 중이었기도 하고, 주말이었기도 해서 동네 영화관에도 남은 자리가 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예매한 자리가 A열이었던가, B열이었던가. 보는 내내 목이 아파서 괴로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국열차>라는 작품이 내게 안겨준 충격이 워낙 거대했기에 여전히 ‘인생작’으로 남아 있다.

독특한 설정
현실적인 개념과 판타지적 요소가 결합하면 더욱더 신비로워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래라거나, 우주를 가로지르는 열차라거나. 설국열차 역시 어린 시절의 내게 그만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철도가 얼어붙어 멸망한 세계를 무한히 방황한다는 설정은 그 세세한 디테일이나 개연성과는 별개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지진이나 해일처럼 흔한 재난이 아닌, 좀비처럼 대놓고 판타지스러운 재난도 아닌, 화학 물질로 세상이 얼어붙어 맞이한 종말은 꽤 그럴듯하다. 그 종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열차는 지구가 365일 주기로 공전하듯이 매년 정해진 경로대로 전 세계를 일주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무한히 지구를 떠도는 인류 마지막 열차라는 단어에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 낭만적인 면모가 담겨 있기 때문일까.
꼬리 칸부터 머리 칸까지 가는 여정 동안 열차 내부의 객실이 각각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스쳐 지나가듯 보여주는 장면들도 흥미롭다. 객실마다 용도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 도축장이 있고, 화원이 있으며, 수족관이 있다. 이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직책이 따로 있고, 생명의 균형을 맞춘다. 정말로 열차라는 공간 안에 작은 세계를 만든 것만 같다. 다만 작중에서 모든 칸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윌포드의 열차를 보면 자연스럽게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한 쌍씩 태우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인간을 위한 식용 동물이 존재하는 건 확인했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들의 존속을 위해서 ‘동물원 칸’ 등을 마련해 두지 않았을까.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옆’으로 빠져나간다.
윌포드 열차 내부는 철저한 계급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정치종교학적 측면도 더해져 열차의 주인 윌포드는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추앙받고 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다. 그에 반해 열차에 무임승차한 꼬리 칸의 사람들은 바퀴벌레를 갈아서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등 삶의 수준이 극과 극을 달린다. 주인공 커티스는 꼬리 칸의 대표로서 봉기해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등에 업고 열차의 절대자 윌포드 앞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커티스가 행한 모든 짓이 사실은 윌포드의 계획이었고, 자신은 놀아났다는 걸 깨닫자 그토록 강인하던 커티스조차 굴복하고 그 권력을 계승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절대로 이 계급사회를 부술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이렇게 부조리하게나마 권력이 순환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어찌 보면 주인공의 승리니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중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남궁민수’는 아예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커티스가 늘 ‘앞’만 보고 나아갔다면, 남궁민수는 ‘옆’을 가리킨다. 이 권력 구조를 뒤엎거나 역전시키려는 것이 아닌, 아예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권력 구조를 뒤엎으려는 커티스마저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남궁민수를 마약 중독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에서 17년 동안 열차 내 계급사회가 얼마나 고착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커티스가 손수 깨웠던 남궁민수가 진정으로 열고 싶었던 문은 다름아닌 ‘옆’으로 나가는 문이었다는 것도 극적인 지점이다.

영화로서의 완성도
이러한 설정과 메시지에서 벗어나서, 설국열차는 영화로서도 훌륭하다. 중간칸에서 롱테이크 전투를 치르다가 예카테리나 다리를 건너는 순간 모두 싸움을 멈추고 해피뉴이어를 외치는 것에 이어서, 암흑 속의 전투와 횃불로 그 난관을 타파하는 것까지. 그 부분은 통째로 잘라내고 싶을 만큼 뛰어난 연출의 연속이었다. 어딘가 SF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엔진실도 시각적으로 훌륭했고, 음악 역시 ‘This Is The End’로 시작해 ‘This Is The Beginning“으로 끝나며 극의 분위기를 돋웠다.
기억에 남은 최초의 영화이자, 인생작이라 부를 만한 영화가 이처럼 육각형에 달하니 이후로도 평가 기준이 확고해졌다. 어느 하나에 치우친 것이 아닌, 독창적인 세계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 시각적 연출과 청각적인 쾌감, 그리고 배우들의 훌륭한 열연 등 다양한 방면으로 만족도가 높아야 비로소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생작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거나, 때로는 통째로 바꿔놓곤 한다. 내게는 설국열차가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나만의 기준을 확고히 하는 순간이 되었다. 이런 직픔을 만나는 날은 언제든, 뜻하지 않게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언제든 그날이 나를 찾아오기를 바라며, 매번 새로운 작품을 소비할 뿐이다.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