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씽, 네가 좋아.

 

와일드씽. 정상적인 규격과 매끄러운 박자에서 의도적으로 이탈해, 삐딱하고 투박한 ‘엇박의 미학’.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가요계를 풍미했던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의 20년 만의 재결합 소동극을 다룬다. ‘생계형 방송인’으로 전락한 리더 황현우, ‘재벌가 며느리’로 본연의 마음을 숨기고 사는 변도미, 그리고 빚더미에 앉은 ‘폭풍래퍼’ 구상구. 헤어졌던 이들이 각자의 사정 속에서 다시 모이게 되는데, <와일드 씽>은 왕년의 스타들이 다시 빛나는 무대에 서는 결과보다, 그들이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겪는 자잘하고 한심한 장애물과 소동극 자체에 집중한다.

 

 


 

 

엇박자 코미디의 묘미

손재곤 감독은 데뷔작 <달콤, 살벌한 연인>부터 <이층의 악당>까지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 올리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왔다. 최근 개봉한 <와일드 씽>은 인과관계보다 ‘상황적 엇박자’로 굴러간다. 교통경찰과의 추격전, 라이벌 가수와의 악연, 전 소속사 대표의 훼방 등 서사는 툭툭 끊기듯 전개되지만, 이 자체가 영화의 독특한 리듬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내용이 2000년대 초반의 케이팝 산업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영화 속 ‘트라이앵글’이 구사하는 음악과 안무는 세련됨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오히려 그 시절의 촌스러움을 가장 진지하고 끈질기게 밀어붙임으로써, 관객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뜨거움을 환기시킨다. 세련된 K-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와일드 씽>은 ‘삑사리’가 나고 박자가 밀려도 땀 흘려 춤추던 아날로그 시대를 손재곤 감독만의 장르로 완성해 낸다.

 

 

 

“모든 배우들이 무리한 영화는 처음”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부분은 단연 캐스팅과 이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 연출에 있었다. 영화는 배우들이 기존에 가진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으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준다. 대중에게 늘 범접할 수 없는, 신비주의의 영역에 존재했던 강동원은 이번 영화에서 완벽히 망가지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독보적인 저음과 묵직한 카리스마를 뽐냈던 엄태구는 이번 작품에서 그 무거운 목소리로 진지하게 랩을 뱉어내는 랩퍼로 활약한다. 여기에 박지현은 얌전한 재벌가 며느리의 삶과 과거 거침없던 메인 보컬의 두 모습을 오가며 유쾌함을 안겨준다. 이 세 사람이 모여 만드는 하모니는 전형적인 역할을 따르지 않는다. 셋 다 나사가 하나씩 풀려 있고 서로 딴소리를 해대지만, 결국 하나의 무대를 향해 다시 뭉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던 캐릭터는 단연, 배우 오정세가 연기한 발라드 가수 최성곤이었다. 트라이앵글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할 때마다 매번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더욱 자아냈다.

 

 

 

트라이앵글이 주는 묘한 울림

영화의 후반부, 온갖 방해 공작을 뚫고 이들이 향하는 곳은 세련된 방송국이 아니라 지방 엑스포의 개최를 위한 공연 무대다. “오늘 우리는 무대에 서는 거야!”라는 현우의 외침은 영화의 맥락 속에서 묘한 울림을 준다. 현실은 냉혹하고 거칠었다. 20년 전의 영광은 흔적도 없고, 나이는 들었으며, 세상은 그들을 원하지 않는다.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이들이 택한 방식은 다름 아닌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다. <와일드 씽>은 겉으로 봤을 때 B급 정서의 코미디처럼 느껴지지만, 그 내면에는 현실의 무게를 견디고 단3분간의 무대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인간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영화가 극장가에서 유쾌한 이변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이 ‘진심의 박자’가 관객들에게 와닿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모여 소리 내며 웃고 즐겼는데 문득, 영화관을 나오다가 영화의 평가를 떠나서 그저 기분이 좋아졌다. 타인과 여러가지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영화관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오늘도 영화관의 존재 의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You May Also Like...

어쩔수가없다-진짜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박찬욱 본인이 해당 영화를 대중적인 영화라고 홍보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작에서 등장한 블랙코미디 장면의 분위기는

본문보기 »

레이디 두아: 그녀는 왜 사라킴이 되었는가

레이디 두아를 보기 전, 2022년 6월 쿠팡플레이에 단독 공개된 드라마 안나와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고편을 보면 한 인물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만약 ‘안나’와 비슷하다면, 이 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런 호기심으로 보게 되었고, 예상과 달리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상당했다.

본문보기 »

울지 않는다고 했지만, 눈물이 필요할 때가 있지 : Baby DONT Cry(베이비돈크라이) – Bittersweet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달라는 메시지를 당차게 전달한 데뷔 곡 ‘F Girl’, 거절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믿으며 상대에게 “너 분명 후회할 거야”라고 외쳤던 ‘지금을 놓치면 분명 너 후회할 거야’,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자세를 담은 ‘I DONT CARE’까지, 모두 그룹명에 맞게 씩씩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본문보기 »
error: 콘텐츠가 보호되어 있습니다.